매거진 잡글

대답 없는 ‘작별인사’

평소에 인사 잘하기

by Groovycat

이번 주 월요일에 친정 엄마를 모시고 전북 익산에 다녀왔다. 익산에 사시는 이모는 3년 여를 암투병을 하셨고 허리 수술을 하시고 몸져누우신 후 일어나지 못하시다가 최근에 사경을 헤매었고 지금은 반신불수가 되어 사람을 못 알아보시게 되었다. 급하게 치료를 하고 그나마 안정되었다고 요양병원으로 옮겼는데 그 마저도 점점 악화하고 있다고 판단, 요양병원에서 보호자를 불렀다고 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라는데,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본다는 생각으로 간 것이다.


난 작년에 어렵게 남편에게 휴가를 요청해 전주에 여행 겸 갔었고, 진짜 목적은 아픈 이모를 만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외국에 있었던 이유도 있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거리 때문인지 자주 보지 못했던 나를 이모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셨다. 병을 앓으시면서 노환까지 겹친 것 같았다. 그래도 어눌하지만 말도 하시고 티브이도 멍하니 보고 하셨는데 이번에 볼 땐 의식이 거의 없으셨다. 가끔 의식이 있어 눈을 뜨기도 한다는데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당신의 여동생을 보고는 정신이 드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엄마와 1박 2일을 계획하고 간 거였다.


엄마도 심장병, 고혈압, 당뇨를 앓고 계셔서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모에 비하면 훨씬 나으신 편이다. 하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결심이 필요한 여행이었다. 익산에 고속버스로 4시간을 넘게 달려 바로 요양병원으로 갔다. 아예 눈을 뜨지 못하셨다. 너무 많은 사람이 왔다고 요양병원에 혼나면서 들어간 거라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의식이 없는 이모를 흔들어 깨울 수는 없었고 그래도 소용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언니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기억하고 이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우리는 인사를 하러 간 거였다. 잘 가라고.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도 이모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작년에 이모가 나를 못 알아보는 걸 보고, 이번이 이모와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나야 자주 오지 못하니까 그렇게 생각한 거고, 엄마는 그렇게 쉽게 돌아가시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이모가 의식이 있었을 때 작별인사를 해뒀으면 어땠을까. 그게 작별인사라고 둘 다 생각은 안 하겠지만 적어도 작별하는 순간이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내가 갑자기 혹은 서서히 가더라도 잘 지내라고, 남은 사람은 잘 살고 걱정마라고. 그리고 이모도 아들 걱정하지 말고 편히 가시라고.

이런 말을 나누는 게 ‘빨리 죽으라는 건가’라며 금기시하는 것보다 그 정도 연세의 어르신들에게는 훨씬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난 내가 아프다면 종종 주변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해둘 것이라 생각했다.


‘아유,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지, 무슨 그런 재수 없는 말을 해’

하지만 작별인사이기도 하고 서로의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기도 하잖아. 네가 잘 살길 바라, 나도 잘 있을게. 그게 뭐 어때서? 이제 난 이모의 대답을 들을 수가 없는데…

이모, 엄마도 나도 잘 살 거예요. 동생도 이모부도 종종 연락하고 들여다볼게요. 의식이 없는 지금도 그 후에도 항상 편안하시길 바라요. 그리고 작별의 순간이 오면 꿈에서라도 대답해줘요. 걱정하지 않게.

83년 7월 1일에 찍은 내 뒷 모습

고물상을 하시던 이모집에 잠시 머물렀었고 이모가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셨다.

누가 뒤에서 찍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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