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글

2022년 뜨거운 여름의 기록

도전하는 시간은 언제나 추억이 된다-의료통역 시험을 보내며

by Groovycat


프리랜서로 통번역 일을 한지 이제 7년에 접어든다. 한국의 대학교에서 전공 4년, 현지 생활 13년, 귀국해서 7년. 옴마나, 중국어와 함께한 지 24년이 되었다.

코로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땐 드라마 번역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일이 아예 안 들어온 시기가 반년쯤? 그리고 화상 상담회라는 방식으로 통역이 간간히 있었고, 드라마도 다시 재개되었고… 하지만 바이어나 외국 손님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다 보니, 그리고 집에 있는 외국 손님(?)만 접하다 보니 중국어에 대한 권태기가 왔었나 보다.


통번역 대학원에 진학할 것도 아니고 동시통역을 할 것도 아닌데, 그냥 큰 사고 없이 넘기면 된다는 생각이 가득 차고 있었고, 중국인 남편이 그나마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기에 통번역에 돌진하면서 이것저것 안 가리고 일하던 자세가 없어지고 있었다.

그럴 즈음, 가끔 있는 상담회에서 같은 일을 하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관통사(관광통역사), 국 코디(국가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자격증이 있고 또 다른 자격증을 도전하는 것은 물론, 상담회장에 볼펜조차 가져오지 않는 나태한 내게 볼펜을 빌려주고, 에이전시에서 일이 오면 내가 연락을 받았는지 확인도 해주는 등 이것저것 챙겨주는 분이었다.


난 창업, 경제, 문화, 소비재 관련 통역이 많았고, 수행 통역이나 VIP 통역, 무대 순차통역에서도 기계나 선박 쪽으로는 많지 않았기에 그 부분에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수출 상담회는 게임, AI, 블록체인 등 전문분야라고 해도 내용이 깊지 않아서 어렵지는 않았지만 항상 모르는 게 나오면 어떡하나 불안하기는 했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가자니 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막노동보다 못한 돈 받으면서 옷은 정장을 입고 오란다. 이거야 말로 정말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가 하는 베베 꼬인 심산이었달까. 특히나 중국어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니 내 능력은 희소성이 없어졌고 나는 그만큼 가치를 업그레이드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를 보면서 이른바 正能量을 나눔 받았달까? 나도 그녀를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에 더불어 계속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의료통역 검정시험을 응시하게 되었다. 물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난 교재의 반도 읽지 못하고 시험을 치게 되었다. 중간에 왜 응시했을까 후회도 많이 했다. 하지만 합격에 대한 포기를 빨리 하게 되면서 오히려 상식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교재를 찬찬히 읽어보며 준비하게 되었다. 서울에 가는 차비에 호텔비에 식비에 응시료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했고 공부 안 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시험을 앞두고 자동으로 하게 되는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열심히 준비하고 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긴장이 풀어져있던 나를 옭아매었던 그 기억만으로도 값진 경험과 투자였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가서 학교를 다니겠다는 아들내미와 함께 중국어 필사도 해보고 그냥 원어민화 되어서 성조도 생각 안 하던 언어적 두뇌(?)를 오래간만에 긴장하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2주 정도만 지나면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상관없다. 계속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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