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글

서로에게 약이 되어

당신에게 필요한 약은 누구입니까

by Groovycat

아들이 중국에 있는 아빠와 할머니를 찾아 떠난지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아들을 보내고 잠시 공항에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30분 정도 대기하고 있다가 부산행 비행기를 타러 김포공항으로 갔다. 평소 먹고 싶던 크림빵과 아메리카노를 샀다.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허겁지겁 크림이 튀어나오는 빵과 아메리카노를 즐겼다.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아들은 잘 날아가고 있겠지, 아들이 없는 한 달 동안 난 멘탈을 잘 잡고 살 수 있겠지? 그렇게 빵과 커피를 단숨에 다 먹고 나서 비행기에 올랐다. 그 날은 바람이 무척이나 많이 부는 날이었다. 길을 걷고 있다면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간판이 혹시 날아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는 그런 바람 말이다.

30분 정도 상공에 있다 이제 착륙을 몇 분 남겨두고 지면에 닿는구나하는 순간, 비행기가 아래위로 요동치고 기울기를 반복했다. 바이킹도 무서워서 못 타는 나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우선 앞 좌석에 매달린 테이블 언저리를 잡고 아무리 용을 써봐도 나에게 안정감을 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게 비행기가 뒤집혀 날아갈 듯 흔들리다가 다시 상공으로 올라갔다. 기상난조로 인해 10분 후 다시 착륙을 시도하겠다는 방송이 나오고 난 패닉상태에 빠졌다.

아들은 중국에 가 있고 한국 집에는 딸 혼자 있을텐데, 내가 이렇게 죽으면 딸은 누구에게 가게 되나. 아프신 친정 부모님이 건사할 상황은 안 되고 집과 짐은 또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까. 국내선 비행기가 추락해서 누가 죽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러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나 혼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 옆 사람과 난기류에 대해 얘기를 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평범한 착륙 전 풍경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50대를 바라보는 나는 가끔 우울증 약을 먹는다. 작은 아이는 틱 장애 약을 먹고 있으며, 아들은 ADHD 약을 예전에 먹었었고 최근에 다시 병원을 가야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리고 엊그제 친정 엄마는 치매판정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셨고 수면제는 20년을 넘게 복용하셨다.

감기약은 일주일이면 약을 안 먹어도 되는데 언제부턴가 장기적으로 먹어야 하는 정신과 약이 내 주변에 항상 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패닉상태에 빠졌던 순간 나를 웃게 만드는 아들내미가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들이 기상 난조를 잠재워줄 수는 없지만 내 패닉은 잠재워주고 같이 괜찮다고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항상 정리가 안 되는 아들의 방을 같이 치워주면서 챙겨야할 것을 함께 도와주는 내가 있다면 아들의 산만함이 잠재워지지 않을까. 틱 행동을 하는 딸에게 내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했더라면 더 심해지지 않았을 텐데. 자신이 치매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고 약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는 엄마 옆에서 약 먹으면 진행이 늦춰질 거라고, 아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줄 수 있는 내가 있다면, 아니, 엄마가 우울증 약을 드시던 50대 초반 내가 외국에 있지 않고 곁에서 소소한 일상을 같이 나누었다면 엄마의 치매 발병을 조금 늦출 수 있었을까.


후회와 복잡한 생각의 꼬리물기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게 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 약처럼 필요한 누군가가 항상 내 옆에 있을 수 없으니 오롯이 혼자일 때도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게 정신과 약이 필요한 것일 거다. 혼자서 몸도 마음도 건강할 수 있게. 나 자신을 챙기고 더 가능하다면 누군가의 약을 내가 대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깊은 후회로 나 자신을 더 병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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