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뇌를 쪼개어 공부하고 싶은 나를 말리며
남편 : 한국 들어갈 때 책 가져갈게. 그때까지 기다려
나 : 아니, 지금 바로 대입하면서 봐야지 단어랑 다 이해가 간단 말이야.
남편 : 우선 넷플릭스로 8부까지 보고 나서 얘기하자.
드라마, 영화에 대해선 남편과 나의 대화가 이렇게 심각할 수가 없다. 이전 글에서 얘기한, 남편과 나의 삼관(三觀)은 다르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목적은 빗나갈지언정 나름 '넷플 뭐 봄'을 중국에 있는 남편과 이야기한다는 것은 좀 많이 특이하다.
아무튼 책의 두께만큼이나 나는 <삼체>라는 작품을 벼러왔었다. 물리학에 대한 개념도 약하고 또 중국어로 대입시켜 보자니 너무 어려웠다. 처음엔 중국 원문으로 도전을 했었는데 그만두었고, 한국에서 번역본으로도 도전했었으나 실패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우선 멈칫했다. 소설원작 드라마의 경우 원작 팬들은 실망할 게 뻔한데 책을 읽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넷플릭스를 먼저 보자니 원작을 보는 내 눈을 훼손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넷플릭스 <삼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물리학에 대한 설명도 나 같은 문과가 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추천한다. 하지만 중문학도 혹은 중국인이 본다면 의문점이 많이 남을 것 같았다.
콘텐츠 메이트인 남편이 대뜸 사진을 보내왔다.
'아, 재미없다' 중국에 있으니 이런 화면을 몰래 볼 수 있다는 게 재미있겠지, 하지만 나는 재미없다. 넷플릭 스니까 가능한 거고, 중국에서 넷플릭스가 인정이 안 되니까 이런 화면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거고. 한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의 역설이 우주의 미래를 정한 도화선이 되었다는 긴 이야기, 복잡한 이야기가 넷플릭스를 통해 딱 구독자들에게 맞춤으로 제작되었을 뿐이다.
중간중간 원어(중국어)를 고유명사로 사용하였다. 서양 배우들이 삼체를 '산티(三體)'라고 그대로 발음하는 것을 보면 원작의 고유성을 지켜주고자 하는 노력(?)과 동양에서 온 우주관을 말하는 듯한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에 느껴졌던 이질감이 4부 이상으로 달려갈수록 인물들은 그저 지구에 사는 과학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저 지구가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만이 남았다.
원작 팬들에게 넷플릭스 <삼체>는 실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삼체>라는 휴고상에 빛나는 중국 SF 소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치밀하고 촘촘하게 묘사된 장면이 드라마에서는 단 몇 초로 지나가버린다. 그게 원작 팬들에게는 아쉬울 것이다. 그 로직의 치밀함이 어쩌면 중국인에겐 국뽕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보기엔 그림처럼 그려야 하는 한자(중국어)로, 돌고 돌아 이진법으로 마무리되는 물리, 수학의 결론을 묘사했다는 것, 그것이 우주의 결말이 되었다는 것이 서양인들에게는 아시아인의 검은 눈동자처럼 신비로웠던 걸까.
남편의 추천처럼 우선은 넷플릭스를 릴랙스 하고 볼 예정이다. 원작 책이 도착하면 천천히 끼워 맞춰가면서 읽기를 도전해 볼 거다. 중국 실물책은 가독성이 너무 낮다. 행간, 자간이 너무 촘촘하다. 완독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