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좋아해

나만의 하루 루틴

by 여노노

때는 바야흐로 2014년. 아주 어릴 적부터 바라던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였다. 요즘은 여행 유튜버도 많고 배낭여행이 꽤 보편화되어있어 엄청난 로망이라거나 미지의 영역은 아닌 것 같지만, 한비야의 에세이가 거의 유일한 세계여행이었던 한비야 키즈(...) 였던 나는 한껏 부푼 마음을 안고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이 너무너무 좋아서 한국에 안 돌아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함께.


이런 즉흥 세계여행에서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것은, 출발 날짜에 임박해서 티켓팅을 하면 돈을 아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동수단과 숙박을 사전에 예약해두지 않으면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가난한 휴학생이자 여행객이었던 내가 돈을 아끼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미리미리 계획하는 것뿐. 시간과 돈은 한정되어 있고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보고 싶은 욕심에 짠 일정은 엄청난 강행군이었다. 거의 <모두의 마블>게임 급으로 랜드마크를 달성하면 다음 도시로 넘어갔었지. 여행을 하는 중간에 계획을 수정할 수도 없었다. 중간 수정이 한 번 생기면 그 이후 예약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게 되다 보니 꾸역꾸역 소화해야 했다.


일정이 빡빡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떠돌이의 삶이었다. 서른 되어 700일간 세계일주! 같은 일을 꿈꿨던 건 허상이었을까?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단순히 체력이 방전되어 생기는 일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가 되어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루틴한 삶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딘가에 정착하여 보내는 여행 - 한 도시에 진득하니 있는 - 이 아닌 메뚜기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니다 여행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요즘은 저녁 9시 반쯤 일과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들어가 10시쯤 잠이 들어 아침 4-5시에 일어난다. 새벽에 눈을 뜨면 차를 한 잔 마시며 모닝페이지를 작성하고, 이후 헬스장으로 가 1~2시간 운동을 하고 회사에 출근한다. 큰일이 없다면 7-8시쯤 퇴근해 사부작거리다 다시 9시 반에 침대로 향하는 루틴이다. 물론 저녁 약속과 같은 이벤트가 있을 때는 예외도 있다. 다만 이 규칙을 깨고 싶지 않아 어지간하면 이벤트는 만들지 않는 게 버릇이 됐다.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는’ 요상한 일상. 그러고 보니 꽂힌 음악은 한곡반복으로 질릴 때까지 듣고, 꽂힌 음식은 매일매일 먹어도 아무렇지 않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재미로 채워가는 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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