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매료된다. '요즘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매일 던져야 하는 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상 속에 가득 들어찬 이야기를 기민하게 감지하기란 쉽지 않다. 꼭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가 아니어도 세상의 모든 일은 전부 이야기다. 정말 평범해 보이는 다큐멘터리도, 그 자체로 스토리이기에 푹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냥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것보다, 방탕하게 살았던 천재 모차르트를 시기하고 질투했던 살리에르와의 이야기를 알면 그의 천재성이 더 돋보인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하기 전 엄청난 우울증에 시달렸다. 얼마나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존감이 엉망이었으면, 피아노 협주곡임에도 불구하고 메인 선율을 오케스트라에 넘겨주었을지.. 그의 마음을 읽으면 음악이 한결 가슴으로 와닿는다. 슈만과 클라라 부부, 그리고 브람스. 이 셋의 러브스토리는 또 어떻고. 스승의 딸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온갖 고초를 다 겪지만 결국 정신병으로 인해 사랑의 순간은 찰나였던 슈만. 그런 슈만과 클라라를 지켜보는 슈만의 제자 브람스는 클라라를 평생 짝사랑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이들의 음악 속에서 사랑이 느껴져 따스하기도, 사랑을 잃은 아픔이 느껴져 가슴이 미어지기도 하는 이유는 이런 숨은 이야기 때문 아닐까.
엄마는 내게, 종종 어릴 때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내가 어릴 적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기에 더 신이 나서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나는 10개월엔 혼자서 걷기 시작했고, 돌 즈음에는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아기가 되어 엄마는 나를 잡으러 다니느라 진땀을 뺐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숱이 너무 많았기에 배냇머리를 주체하기 어려웠다고도, 말도 곧잘 따라 해서 기본 발달 연령보다 훨씬 빠르게 엄마와 의사소통이 되었다고도 했다. 어느 날은 저녁 반찬으로 올라온 가자미구이를 보며 내가 인생 처음으로 먹어본 생선은 가자미였다고 일러주었다. 한글을 따로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차창밖으로 보이는 간판을 돌연 읽어내더라고, 놀이방 선생님이 연호 엄청 똑똑한 것 같으니 영재원 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냐 권유했다고 한다. 엄마는 덜컥 겁이 났더랬다. 우리 아이가 영재인건 너무너무 좋은데, 그렇게 똑똑한 딸을 물심양면 지원 할 만큼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오는 두려움과 교육이라면 맹목적으로 무엇이든 하는 득달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현실의 벽에 먼저 부딪혔다고 했다. 무엇이 됐든 이야기의 결론은 언제나, 나는 엄마가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혼자 알아서 잘하는 똑똑한 아기였다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전부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엄마의 눈엔 내가 똑똑한 아기였을 테다. 나는 엄마라는 소설가가 쓴 '똑똑한 아기'의 이야기에 반했고, 나 자신을 그 아이라고 믿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건 나만의 영웅설화인 셈이다. 고난의 순간에 나를 비범하게 만들어 줄 숨은 이야기. 현실에 부대껴 와글와글한 속을 달래고 싶을 때, 꺼내보며 감정을 달래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 그렇게 이야기가 만들어 준 디딤돌로 이야기를 만드는 삶을 살아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