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길

by 여노노

열등감,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한 인간으로 낮추어 평가하는 감정.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도 쉬이 마음이 펄럭이던 사춘기 소녀에게 열등감은 짝사랑만큼이나 강렬한 자극이었다. 성장의 동력과 합리화의 재료가 필요한 지점엔 언제나 열등감이 함께 있을 만큼 매료됐다. 원자 폭탄을 완성시키고 난 후 절대 그 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 오펜하이머 말마따나, 한 번 도취된 강렬함의 경험은 자극을 지속적으로 쫓게 했다. 시한폭탄을 자기 발전의 토대로 삼고 있다니.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달콤한 비행의 유혹 사이에서 선행을 선택하다니. 어쩔 땐 자신이 기특하기까지 하더라니까.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지는 모습은 열등감이 집어삼킨 나를 보는 것 같다. 자신을 지키려 분출하는 마음이지만 그 대단한 위력에 보호는 커녕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꼴이다. 열등감의 폭격이 여러 번 지나간 후 맞이하는 황폐함은 무척이나 허무했다. 열등감으로 인한 성장에는 내성이 있어, 기대만큼 자라기 위해서는 더 크고 더 센 폭탄을 터트려야만 했다.

너무 지친 나머지 열등감과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유독 자신이 못나 보이는 때에는 마음속에 산재한 불발탄이 빼꼼 머리를 내민다. 질투나 미움 대신 익숙한 감정을 끌어온다. 낯익은 길을 따라 마음이 흐른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라도 새로운 길을 내어본다. 질투의 자리엔 부러움이, 미움의 자리엔 사랑이 존재한다. 천 번, 만 번 발자국이 쌓여야 길이 생기듯이, 사랑을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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