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리셋(Reset, 재설정) 버튼이 있었으면 했다. 완벽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에게 실수란 치부와도 같은 것이니까. 나의 모든 순간이 빛나는 성공의 경험이기 위해서는, 실패 후 리셋 버튼을 눌러 오점을 지워내야 했지만 이미 뱉은 말, 행동, 눈빛은 그 무엇으로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수용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만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무 살이 좋았다. 십이 년간 한 동네에서 자라며 생긴 모든 인맥과 추억을 뒤로하고 전혀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새로운 학교, 친구, 경험들로 둘러싸이니 리셋 버튼을 누른 기분이었거든. 후련함도 잠시, 나는 또 지워버리고 싶은 오점을 마주하며 또 다른 재설정의 기회를 기대했다. 그때 여행이 내게로 온 건 운명이었을까. 그냥 훌쩍 떠나버리기만 하면 됐다. 이 쉬운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통탄하기까지 하더라고. 그곳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고 아무개로 존재할 수 있었다. 삶의 궤적은 자신의 입을 통하지 않는 한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점이 좋았다. 새로운 자신으로 분할 수 있는 것. 지난날 과오를 반성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지혜는 축적한 채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비겁하고 치사한 회피라는 걸 알면서도 지독하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조금은 이해가 될까. 완전무결한 인간이어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면 공감이 될까. 세상에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빈틈으로 인해 다양한 세상이 내게 온다는 것도 안다.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 리셋(reset)이 아니라 셋(set)만 있어도 충분하다.
이전에 나는 유랑민의 삶을 꿈꿨다. 늘 한국을 떠나고 싶었고 외국에 가면 기분이 좋았다. 딱히 여행을 좋아한다든가 외국을 선호한 건 아니었다. 당시에 내가 자꾸만 해외로 나가려고 했던 건 그로부터 느껴지는 해방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싶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외국에 나가면 아무도 나를 모른다. 한국 사람이면 으레 따라야 하는 주류의 삶도 없었고 나를 재촉하는 목소리도 없었으며 비교나 경쟁의 대상도 없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는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낯선 곳이 좋았다. 외국에 가면 모든 것이 백지화된다. 그렇게 매번 삶을 리셋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도피에는 언제나 시간제한이 따랐다. 그곳에 오래 머물며 더 이상 여행객이 아니게 되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었다. 만족을 모르는 마음에는 공허함이 잦아들었다. 나는 그제야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는 말을 이해했다.
어디로 가든 그곳이 해답이 될 수 없었던 건 나를 구속하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렇게 나를 증명해야만 한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혀온 건 나 자신이었다. 결국 모든 건 나의 선택이었다.
그것을 안 뒤로는 낙원을 찾아 헤매는 것을 그만두었다. 스스로 평화를 찾지 못하는 한 낙원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내 삶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고 조화롭게 살고자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내 안의 평화를 이룬다면 그곳이 어디든 나는 괜찮을 것이다.
[리틀타네 youtube] 한국 귀국, 늘 떠나고 싶었던 과거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