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보다는 지적에 더욱 귀 기울이는 사람. 칭찬은 인사치레로 넘기고 비난 섞인 말에는 뇌가 반짝 반응해서 지적받은 부분만 고치면 성장할 수 있는 거네? 내가 모르던 나의 약점을 타인의 시선으로 보게 되어 좋다고 빈축을 곱씹고 곱씹는 그런 사람. 그게 나였다. 습관처럼 틀어놓은 유튜브에서 나를 적확하게 정의하여 놀랐다. 가진 것보다 소유하지 않은 것을 더욱 크게 바라보며 빈 공간을 채워 넣기 바쁜 일상에는 무지성으로 날아오는 비판도 좋은 먹잇감이다. 장점과 매력은 한 가지도 명확하게 형언할 수 없으면서 부족함은 줄줄이 사탕처럼 술술 말할 수 있다는 건 부족함에 곱절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나은 자신이 되었냐 자문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성과라고 한다면 사회생활의 둥글둥글한 기술을 얻은 것이겠고 실이라면 무채색 인간이 되었다는 걸 테지.
드라마 속 캐릭터를 만들 때, 이 인물의 결핍이 무엇이냐를 꼭 확인한다. 있어야 할 것이 모자란 지점에서 동력이 생긴다. 그 틈바구니에서 매력이 나온다. 육각형이 전부 고르게 채워진 인물이라 재미없다는 피드백을 거침없이 보내면서도 크고 반듯한 정육각형을 표방하는 심연을 들키자 이내 낯부끄러워진다. 양면적인 자신이 웃기다.
지향점으로 삼는 수많은 장점들도 결국 남의 떡이 더 커 보인 것이었음을 받아들인다. 마케팅 주력 상품을 시선이 가장 편히 머무는 곳에 배치하는 원리를 자신에게도 적용해 본다. 일부러 쪼그려 앉아 안 팔릴 물건들을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시선의 위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드라마는 곧 우리네 삶이듯이 나의 삶도 드라마처럼 살기로 위로한다. 부족함을 재미로 치환하면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