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어린 시절까지 자세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함께 놀았던 친구들의 이름, 다니던 유치원과 반 이름(무지개 유치원 즐거운반, 생각반 친구들 있니!!), 그 친구들과 나눈 대화, 그 과정에서 들었던 감정까지도. 유치원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어느 날, 된장국에 두부가 들어있었던가 두부조림이 반찬으로 나왔었던가 그랬을 거다. 내 옆에 앉은 Y는 나에게 대뜸 두부를 좋아하냐 물었다. Y는 두부를 싫어하나?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나한테 주려고 그러나? 응, 나 두부 좋아해. 하고 대답하자 그럼 넌 두부랑 결혼해!!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처음으로 황당함을 알게 된 순간이다.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휘발된다는 면에서 신빙성이 부족하겠지마는, 이토록 구체적인 기억 가운데 나는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는 아이로 자리해 있다. 많은 순간 스스로에게 '이거 이렇게 하면 엄마가 좋아하겠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철저하게 행동의 준거는 엄마의 호불호였다. 그렇지만 어린아이가 칭찬받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어른의 상식에서 보면 당연한 것들이다. 엄마도 그랬을 테다. 마땅히 그러하기에 그런 줄도 미처 몰랐던 아주 작은 일이었겠지. 칭찬으로 시선을 끌어오고자 하는 노력은 어지간해선 통하지 않는 일이었다.
칭찬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주는 것도 인색하다. 자신이 받고자 하는 갈망이 크기 때문이다. 경험 부족은 미숙한 대처로 이어진다. 칭찬을 받는 쑥스럽고 좋은데 민망한 순간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에이 뭘요~, 그렇지만 이런 건 제대로 못했는걸요, 별것도 아닌데요,라는 말로 자신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도, 머쓱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겸손함이기도 했다. 칭찬을 내어 주는 상대의 마음은 채 고려하지 못한 처사였다. 마침내 칭찬을 주는 여유가 생기고 거울 속 나와 동일한 사람을 만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칭찬을 잘 받는 것도 중요하구나.
별것 없다. 정말요? 진짜요? 고맙습니다. 하고 활짝 웃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 참 많은 길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