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my side

by 여노노

고등학교 1학년. 가장 예민하고 희망에 넘치는 시기. 신도시인지라 한 동네에서 같은 초, 중, 고등학교를 함께 진학하느라 새로울 것도 없지마는, 다른 교복을 입고 익숙하지 않은 학교를 간다는 게 그 시절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변화였다. 원하던 외고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으로 점철된 새 학년의 시작에는 분노로 악에 받쳐 '외고 편입'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함께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자 노여움에 가득 찬 목표는 퇴색되어 갔다.

우리는 중학교를 함께 다녔고, 그래서 그들은 나의 상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밑바닥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으나, 고등학교 입학 전 '예비 고1 준비반'따위의 학원을 통해 더욱 단단해졌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무리 지어 다녔다. 각자가 모두 다른 반이었음에도 '가장 친한 친구들'의 탑 리스트에 자리했다.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은 많은 것을 함께 했다. 공부도 노는 것도 모두. 고3을 제외하고 매년 여름, 겨울 휴가, 명절과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같이 자리했다. 그렇게 같이 공유하는 추억이 해가 지날수록 축적된다는 게 좋았다. 함께 함으로써 동반되는 환희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다섯 명의 끈끈한 우정 속에 그 누구도 침투할 수 없도록 높은 울타리를 쳤다. 우리 안에서도 친분의 크기는 각자 다 다른데, 우리끼리 견고해지기도 전에 타인이 들어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우리'가 먼저였고, 모두들 그러길 바랐다. 혹여나 우리가 아닌 너희에게 약간만 시선을 돌려도 거리낌 없이 서운함을 표현했다.

수능이 끝나고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짜던 참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울타리 밖 친구가 자신도 '우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 한다는 전언에 나의 표정은 굳어졌다. 나름 탄탄히 쌓았다 여겼던 담장에 틈이 생겼다. 잔잔한 강물에 돌이 던져졌다. 십 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고, 우리끼리'만' 고등학교 생활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나의 의견에 모두가 반대했다. 동시에 내가 쌓아 올린 결계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삼 년간 적립된 네 명의 부정적 감정이 단 두어 시간 동안 퍼부어지자 더 반격할 것도 없이 그냥 K.O. 다. 눈이 떠지지 않을 만큼 울면서 집으로 와 문자를 남겼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너희를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가족사로, 개인사로 불안하고 서툰 나와 추억을 나눠주어 고맙다고.

작년 이맘때, 선배가 나의 방패막이 되어 회사에 큰 소리를 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참 많이 울었다. 얘가 아무리 그지 같아 보여도 내 새끼예요. 내가 책임질게요. 그 말이 이루 형용할 수 없이 고맙고 미안했다. 아직 상처로 남아있는 그때를 복기하면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요동치는 눈물이 흐른다. 그 안에는 처음으로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준 어른이 생겼다는 안도가 섞여 있다. 그제야 그토록 원했던 안정감의 실체가 드러난다. 나에게 안정감이란 내 편이다. 둘도 없던 친구들에게 수도 없이 같은 편임을 확인받고자 했던 십 대의 자신이 떠오른다. 요새 속에 함께 들어앉아 있으면 우리 편이라고 여겼던 청순한 미숙함이 안쓰럽다. 같은 편이라는 미명 하에 나의 마음 안에 갇혔던 이들의 절규를 이제사 십분 이해하게 됐다.

국뽕과 눈물과 사랑과 안정은 모두 맞닿아 있다. 내가 가장 먼저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면 그것이 곧 사랑이고 안정이라는 원리를 늦게나마 알게 됐다. 나는 나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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