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망각이다. 그렇다면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인 나는 자연의 은총을 덜 받은 셈이다. 이 능력이 지식을 붙잡아두는 데에 특화되었다면 벌써 하버드에 가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대화와 상황을 각인하는 분야가 큰 비중을 차지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기록을 좋아해 초, 중, 고등학생 시절은 물론 현재까지 전부 일기를 지니고 있는 건 장기 기억까지 알뜰히 활용하겠다는 엄청난 의지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내 맘에 콕 박혔던 대화라면 훨씬 기억하기 쉬워진다. 즉, 뒤끝이 길어진다. 특히나 상대의 말로써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면 그 기억은 더욱 오래 지속된다. 속상한 마음이 우산 접듯 흔쾌히 걷어지지 않는 건 머릿속을 지배하는 잔상이 상처를 후벼 파기 때문이겠지. 근래 꽤 오래도록 용서가 마음의 화두였다. 나를 위해 용서하는 게 맞다는 걸 알면서도 수면 위로 떠오르는 기억은 자꾸 상대를 단죄한다. 네가 이렇게 말했잖아,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제 고작 중환자실을 빠져나왔을 뿐 다친 마음은 아직 병원에 있는데 용서는 가당치도 않지, 하며 토라진 감정에 힘을 싣는다.
최근 이강인 선수를 넓은 마음으로 품었다는 손흥민 선수의 글을 열 번도 넘게 읽었다. 나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용서가, 그에게는 어떻게 이리도 뚝딱 가능한 일인 건지. 그 비법을 알고 싶었다. 그는 뭐든 잘 잊는 하늘의 축복을 받았을 수도, 나와는 달리 쉽게 상처 나지 않는 강철 심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혹여나 그가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가십과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상황에 그가 용서라는 선택을 한 것은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영리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용서는 잊어버리는 게 아니다. 지는 게 아니다. 억울한 건 더욱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