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고군분투하는 내게, 선배는 되려 자신의 시선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일렀다. 내 작품도 남의 드라마 보듯 제3자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애정과 객관이 반비례하는 일반적인 사례에서 벗어나서, 소설로 치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작품을 볼 수 있을 때 비범의 길을 걸을 수 있단 것. 멀리 떨어져서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한다.
같은 작품의 구성원으로 매일 보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주 7일 출근에 하루 16시간씩 붙어 있는 현장 생활을 꽉 채운 2년간 함께 했으니 당시의 나를 가장 깊게 알고 있는 친구다. 자연스레 대화 주제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했고 즐겁게 떠들다 웃으며 헤어졌지만 귀가하는 마음은 무겁다. 미처 잊고 있던 기분을 이제서야 차분히 복기할 수 있게 된 탓이다. 가르침을 볼모로 감정을 쏟아붓던 사수, 내 편이 되어줬으면 하는 기대를 무참히 꺾어버린 상사, 그래서 더욱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 애쓰던 시간들. 그땐 틀렸지만 지금은 맞다는 생각에 가닿는 건 비로소 나를 남 보듯 여길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제3자로 나를 관찰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존재하는 많은 감정들엔 의심이 기본값이라는 걸 알았다. 할 수 있지? 라는 말의 토대에 의심이 있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마음이다.
의심.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 타인에게 믿음직스러운 역할이 되고자 노력한 건 누군가 나를 그만큼 믿어주길 바라는 속내였단 걸 인정한다. 그래서 우리만의 비밀을 만들고자 했고, 내밀한 속 사정을 털어놓으면 기뻤고, 진중한 사람이라는 칭찬에 하늘을 날 듯했다. 믿음이 곧 애정이고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여태껏 모래 위에 '나는 나를 사랑해!'라는 구호로 집을 지으면서 내구성이 좋지 않아 불안에 떨었다는 말이 된다.
한 글자만 바꾸면 된다. 지를 어로. 할 수 있지를 할 수 있어로. 꼬부랑거리는 물음표가 아닌 꼿꼿이 뻗은 느낌표로. 그러면 의심은 믿음이 된다.
자기 인생에 물음표 던지지 마.
그냥 느낌표만 딱 던져.
물음표랑 느낌표 섞어서 던지는 건 더 나쁘고,
난 될 거다. 난 될 거다.. 이번엔 꼭 될 거다.
느낌표. 알았어?
SBS <질투의 화신> 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