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으로 살고 싶어요
나는 꼭 고장난 용수철 같아요. 사람들은 모두 용수철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해요.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으면 처음에는 그 압력을 고스란히 흡수하며 움츠려들지만 나중에 그 압력이 사라지고 나면 움츠렸던 몫까지 확 튀어오르는 거예요. 용수철마다 견딜 수 있는 압력이 제각각이라 어떤 용수철은 기꺼이 버텨내는 압력을 어떤 용수철은 전혀 이겨내지 못하기도 해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용수철이면서 서로에 대한 압력이기도 해요. 우리는 상대가 '나'라는 압력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며, 그리고 '상대'라는 압력에 대한 반응으로 솔직하게 튀어오르면서, 관계의 적정선을 찾아나가는 거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두 가지에요. 압력이 가해졌을 때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솔직하게 튀어오르는 용수철 본연의 자세가 첫 번째. 상대가 어느 정도의 압력에 어느 정도로 반응하는 용수철인지 관찰하려는 태도가 두 번째. 저는 저의 모든 역량을 두 번째에 집중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다 보니 상대의 단면을 보고 다른 모습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 역량 개발의 노력이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피해가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약간은 비극적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진짜 비극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비극은 저에게 용수철 본연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커다란 손이 와서 나를 꾹 누르고 가요. 내가 만약 건강한 용수철이었다면 손이 사라진 즉시 나의 탄성과 나의 방향으로 경쾌하게 폴짝 튀어올랐을 거예요. 그러면 커다란 손은 그 정보를 토대로 내가 어떤 용수철인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을 테죠.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하며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질 거구요. 내가 그렇게 솔직하게 반응하고 있는 한, 나를 직접 눌러본 적은 없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를 지켜보던 사람 역시 그 관찰만으로 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될 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는 고장난 용수철이야. 그래서 나를 꾹 누른 손이 사라지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간 다음에도 납작하게 눌린 채 바닥에 늘어붙어 있어요. 이 정도 자극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정말 괜찮으니 신경쓰지 마, ... 듣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중얼중얼, 중얼중얼.
하지만 나는 어쨌든 용수철이야. 그러니 계속 그렇게 바닥에 늘어붙어 있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모두가 잠든 한밤 중에 갑자기 툭 튀어오를 수밖에. 그건 꼭 갑작스레 터지는 서러운 울음 같아요. 밤산책을 하던 고양이가 화들짝 놀라 오던 길을 피해 가네요. 저는 어색하게 주위를 둘러봐요. 아까 그 커다란 손이 와서 나를 누를 때만 해도 한낮이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새벽인 걸까?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러간 거지? 궁금한 건 많지만 물어볼 곳이 없어요. 그러니 어색하게 주위를 둘러볼 수밖에요. 그리고는 또 버릇처럼 나를 미워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 모든 것을 과거 완료형으로만 간신히 이야기하며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 웃고 싶은 순간에 웃지 못하고, 화내고 싶은 순간에 화내지 못하고, 슬퍼하고 싶은 순간에 슬퍼하지 못하는 사람처럼요. 옆에 같은 마음의 친구가 있으면 사는 게 한결 쉬워져요. 같이 웃고, 같이 화내고, 같이 슬퍼하는 건 좀 쉬우니까. 그치만 언제나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은 있어도, 친한 용수철 따라 같이 튀어오른다는 말은 없으니까.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시차가 있다고 믿어요.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 왔어요. 그런데 요즘은요. 내 안에도 조금씩 시차가 생기는 걸 느껴요. 자극이 가해지는 시간과 그것에 반응하는 시간 사이의 차이가 계속 생겨나고 있어요. 이것과 저것 사이에 시차가 있다는 건 그 둘 사이 거리가 멀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내 안에서 시차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말은 내 안에 무언가가 계속 분열되며 멀어지고 있다는 뜻일 지도 몰라요. 한 번 이런 생각이 시작되면 내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모습이 연상되어서 쉽게 잠들 수가 없어요.
현재 진행형으로 살고 싶어요. 그 때 사실 고마웠다는 말 대신에 고맙다고, 그 때 사실 서운했다는 말 대신에 서운하다고, 그 떄 화가 났었다는 말 대신에 지금 좀 화가 났다고, 말하면서요. 과거완료형의 말하기는 어떤 측면에서는 참으로 무해한 말하기에요. 하지만 내 안에 무언가가 계속 분열되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이상,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아, 그런데 지금 문득 생각난 건데요. 예전의 저는 심지어 과거 완료형으로조차 이야기를 못 하는 사람이었답니다. 그나마 노력해서 과거 완료형으로나마 말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어쩌면 이번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