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웃음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을 수 있는 이유

by 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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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을 꼭 끼고 걷는 여고생들을 더러 볼 때가 있다. 친구끼리 팔짱을 끼거나 손 잡고 걷는 여고생들의 모습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엮인 채 숨쉴 틈도 없이 까르르 웃는다. 오늘 싸온 도시락 반찬 이야기를 하며, 지하철 안내방송 목소리를 흉내내며,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파문을 보며.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 게 그 나이대의 소녀라는 이야기를 되새겼고, 그럴 때마다 조금씩 불행해졌다. 그건 일종의 선고 같았다. 당신은 이제 웃음을 잃은 것입니다, 이유 없는 웃음은 이제 당신에게 허락되지 않아요, 그건 저 나이 대의 소녀들에게만 허락된 축복입니다, 하는 준엄하고 거스를 수 없는 선고. 그래서 아이들이 웃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불행해졌다. 사소한 이유로 크게 불행해 질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가진 병의 특징이라는 걸 잘 알고 있던 나는 큰 저항 없이 내 몫의 불행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가끔은 혼자 걸어 가는 여고생을 보기도 한다. 늘 친구와 웃으며 함께 걸어가던 아이가 혼자 걸어가는 모습도 보고, 늘 혼자 걸어가던 아이가 친구와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도 본다. 나는 혼자 또 따로 걸어가는 여고생들의 모습을 보며,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 게 여고생이라는 이야기가 생긴 건 그들이 어린 여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와 함께 하는 존재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말로 그러했다. 혼자 걷는 아이들은 여간해서는 웃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함께 걷는 아이들은 시종일관 웃는 낯이었다. 마찬가지로 생각해 본다면, 도시를 걷는 어른들의 표정이 전부 탁하고 딱딱한 건 그들이 친구와 함께 있지 않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자 나에게 더 이상 이유 없는 웃음을 허락할 수 없다던 선고 역시 거두어졌다. 이유 없는 웃음은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가능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함께’라는 조건이 따라붙기는 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간과의 싸움에 비하면 이 편이 좀 더 해볼만 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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