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감정을 대하는 한 가지 방법
날씨가 너무 좋으면 종종 울고 싶을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계절에 맞지 않게 두꺼운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걷다 보면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게 서툴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은 한결 가볍게 입고 나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던 걸까. 아니면 한결이 아니라 두결 세결 더 가볍게 입어야 했던 걸까. 어쩔 수 없이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게 서툴까.'
햇빛을 충분히 쬐었다고 생각했는데 세로토닌 분비에는 실패한 걸까?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했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일본의 정신과에서는 상담보다는 약을 처방해주는 것이 보통인데, 그건 일본 의학계가 마음 혹은 기분의 이상을 뇌의 기능 이상으로 판단하는 풍조 때문이란다. 우리 뇌는 상황에 맞게 다양한 신경물질을 분비한다. 의욕을 돋구어주는 도파민 같은 신경물질이나 안정을 시켜주는 가바 같은 신경물질. 그것들의 밸런스를 조절하는 신경물질이 세로토닌인데, 세로토닌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으면 우울증 증세가 나타난다는 가설이 현재 지배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대부분의 약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그치만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이니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자'라는 대증요법에 가까운 접근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신과 의사도 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로토닌 분비에 이상이 생긴 것 역시 스트레스의 결과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들이 정말 해야 할 일은 약 처방이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아닐까?' 이건 정신과 간호사가 쓴 에세이의 마지막 구절인 '마음의 병은 변화에 대한 반응'과도 연결되는 내용이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읽은 책의 내용을 하나 둘 복기하며 계단을 올라 집에 도착했다.
아직 하루가 한참 남았는데도 밖에 있을 기운이 없어 집에 돌아온 게 분했다. 세로토닌 하나 제대로 분비하지 못한 내 뇌에 실망했고, 세로토닌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도록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 상황도 미웠고, 이도 저도 못한 채 어정대다가 결국 집에 돌아온 게 창피했다. 그 모든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바닥에 누워 '아아, 오늘 산책은 정말 최악이었다!' 라고 외쳤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렇게 외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졌다.
말을 뱉기 전의 나는 나와, 나의 뇌와, 나의 상황과, 나의 인생을 최악이라 생각했고,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우울함과 두통이 평생 계속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아, 오늘 산책은 정말 최악이었다!'라는 외침 한 번에 기분 나쁘게 엉겨있던 그 모든 근거 없는 믿음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투두둑 끊어져 나간 것이다. 홀가분함을 느끼며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일단, '오늘 산책은 정말 최악이었다!'라는 진술은 '오늘 산책'이라고 최악의 대상을 한정하는 효과가 있다. 즉, 최악인 것은 나와, 나의 뇌와, 나의 상황과, 나의 인생이 아니라 그냥 '오늘 산책'인 것이다. 거기에 '최악이-었-다'는 과거형 표현이 한 번 더 팔을 걷어붙이고 그 모든 시련을 이미 끝난 것으로 만들어준다. 게다가 내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그 문장을 내 귀로 직접 듣고 나니 그 또한 우스워 피식 웃게 되었는데, 이유야 어쨌든 웃음을 뱉고 나니 기분이 좀 나그러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 드디어 세로토닌 분비에 성공한 걸까?
마음 속엔 언제나 다양한 버전의 안 좋은 생각이 산처럼 쌓여 있다. 어둡고 습한 내용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었다가는 상대와의 관계가 망가지고 말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역시 산처럼 쌓여 있는 안 좋은 생각의 예시이다. 그래서일까. 안 좋은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살아온 것 같다. 살다보면 그런 감정조차 꺼내야만 할 때가 있지만 나는 그 타이밍마저도 극렬하게 피하며 살아왔다. 적절하게 터뜨려야 하는 감정이 무작정 쌓이다 보면 종래엔 와르르 쏟아지게 마련이다. 하나씩이라면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쏟아지는 감정은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모든 걸 파괴하고 쓸어버리는 감정의 산사태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산사태가 지나가고 난 뒤 황폐해진 마음에 '적절한 표현'이라는 꽃씨를 뿌려볼 만도 한데 나는 또 습관처럼 안 좋은 생각의 산을 쌓고야 만다. 그러면 또 산사태가 오지. 그것의 반복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계속 다루려고 시도를 해야 시행착오도 겪을 테고, 그래야 점점 나아질 텐데... 그러던 차에 오늘 어쩌다 뱉은 '아아, 오늘 산책은 정말 최악이었다!'는 참 좋은 시도였다. 부정적인 감정의 대상을 한정하고, 그것을 지나간 일로 표현하면서, 무한 팽창 하기 직전의 안 좋은 기분으로부터 잘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기념으로 다시 한 번 외친다. '아아, 오늘 산책은 정말 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