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파란 하늘

이해와 오해를 넘나드는 관계

by 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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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사람은 한 권의 책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기승전결이나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잘 쓰여진 책 같은 사람은 정말 정말 만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이름과 숫자를 나열해 둔 전화번호부, 강의를 들으며 끄적인 노트,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둔 스크랩북에 가까운 것 같아. 물론 저도 그런 사람이고요. 그렇다고 애석해 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조각난 문장들을, 본인 눈에 닿지 않는 곳에 묻어 있는 문장들을 끈기있게 관찰할 수 있으니까요. 밤하늘에 점 몇 개를 이어 큰곰을 만들고 물병을 만들듯, 조각난 문장을 이어 서로에게 멋진 이야기를 선물해 주는 거예요.


상대방을 지긋이 바라보다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겠다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요. 조금 더 깊게 또 오래 바라보다 보면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서 혼란에 빠지고 말아요. 내가 관찰한 단편들로 전형적인 틀을 만든 다음, 그 틀에 맞춰 사람을 판단하려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손쉬운 판단'을 직관으로 착각했던 건 아닐까, ... 하는 반성도 하곤 했어요. 그치만.. 그런 '오해'는 관계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 아닐까? 우리가 정말 해야 하는 건 '오해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보다는 '오해에 주눅들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어요. '이것도 내가 오해하는 거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다가가는 걸 주저하다 보면 서로 간의 거리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테니까요. 어쩌면 소통이란 완벽한 이해 위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해와 오해를 넘나드는 과정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어요. 너의 이해가 오해였음을 알려주고, 그로 인해 나의 오해를 이해하게 되는 그런 과정 말이에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 사람의 입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렇다고 만나는 모든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몇몇의 사람만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데요. 그러한 관찰의 대상이 저에겐 '친구'랍니다. 친구라서 자세히 보고 있는 건지, 자세히 보다 보니 친구가 된 건지 종종 헷갈리지만요. 아, 예전에 1박 2일로 대구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갔던 적이 있어요. <월리를 찾아라> 책 한 권 펼쳐두고 세네시간 깔깔대며 놀았는데요. 그 순간이 굉장히 즐거웠어요.


함께 웃는 경험은 즐거운 추억이 된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지만요. 불안한 미래에 맞서는 힘이 되어준다는 측면에서도 참 소중한 것 같아요. 나이 먹는 게 별 건가, 이렇게 좋은 과거를 하나 둘 만들어가면 되는 거지, ... 하는 생각을 하면 좀 힘이 나거든요. 나이를 먹어갈 수록 이제 더 이상 헤매면 안 될 것 같고, 나만의 전문분야가 있어야만 할 것 같고, 세상살이에 능숙해져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 하늘이 노래질 때가 있어요. 사실 무척이나 자주 그래요. 그럴 땐 심호흡을 하고 저를 달랜답니다. 시간 가는 게 뭐 별 거냐고, 언제든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추억들을 부지런히 늘려가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다보면 노랗게 질렸던 하늘이 어느 새 다시 파랗게 돌아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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