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너무 달라

그런데도 우린 가까워졌어

by 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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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내 편이 된 이후로 나는 많이 행복해졌다. 이전엔 내가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만 느껴졌다면, 지금은 내가 변해가는 생각과 설명불가능한 감정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사람'으로 느껴진다. 쓸데없는 고민에 잠을 설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건 여전하지만, 모든 것에 이유를 붙일 필요도 없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순간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는 게 행복하다. 계기는 분명하다. 나는 잃어버렸던 여름을 찾았다. 잃어버렸던 여름을 되찾았다는 건 내 인생에 다시 수박과 매미와 여름방학이 찾아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덩달아 모기가 따라온 건 좀 애석하지만 뭐, 그것조차 여름의 한 부분이니까.


내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그냥 '친구와 놀았다' 라 쓸 때의 '친구'가 지칭하는 건 딱 한 명이다. 내가 '친구들과 놀았다'라고 쓸 때의 친구들은 보통은 두 명, 때로는 세 명인데, 그들은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친구들과 놀았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 라는 문장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행복해졌다. 그 전에 내가 만들 수 있는 문장은 그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문장 뿐이었으니까.


그들이 내게 이렇게 중요하듯 그들 역시 나를 중요하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예전에는 많이 했지만, 지금은 정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의 마음이다. 예전엔 우리의 다른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세계가 찢어지는 것 같은 슬픔과 막막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른 게 당연하지 싶은 마음이다. 이렇게나 다른 우리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예전에 내가 뱉던 '우린 너무 달라'라는 말이 '그래서 우린 가까워질 수 없어'라는 뜻이었다면, 지금 내가 뱉는 '우린 너무 달라'라는 말은 '그런데도 우린 가까워졌어'라는 뜻에 가깝다. 물론 항상 신기하고 즐겁고 감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게, 그래서 불완전한 언어에 기대어 서로를 설명해야 하고, 너무나 다른 가치관을 부딪쳐가며 소통해야 한다는 게 가끔은 힘에 부친다. 하지만 힘에 부친 와중에도 서로를 찾고 또 붙어 있으려는 마음이야말로, 서로를 '친구'로 묶어주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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