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정답지

도너츠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빵이야

by 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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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걸 정확하게 입 밖으로 표현해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와중에도 마음 한 구석엔 늘 정답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기대를 품고 살면서, 정작 그 기대가 실현되기 위한 노력은 거의 하지 않으며 살았던 셈이다. 나의 기대가 어그러질 때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상대가 없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내 마음엔 빨간 비가 내렸다. 참 이상하지. 애초에 내가 가진 정답을 맞추지 못한 건 그들인데 어째서 내가 점점 오답이 되어간 걸까?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문제를 풀고 또 답을 맞추는 게 일과였던 시절이 있다. 답지를 들고 채점을 하다가 내 예상보다 이상하게 많이 틀리면 답지를 살펴 봤다. 간혹 답지 자체를 잘못 보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작년 6월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놓고는 9월 모의고사 답지로 채점을 하는 식의 실수 말이다. 아무리 정확한 답지라 해도 그 문제에 맞는 답지가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마음 속에 정답을 가지고 살다 보면 오답의 사람들과 오답의 상황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1차적으로는 외부 세계가 오답이 되지만 그게 쌓이고 쌓여 단 하나의 정답도 발견해내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면, 나는 나를 의심하게 된다. 세상은 6월 모의고사 문제로 가득 차 있는데 나는 9월 모의고사 정답지를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가끔은 나의 정답지로 나 자신을 채점해보기도 하는데 나조차도 50점을 넘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내 마음 속에 있는 정답지가 노력하면 풀 수 있는 문제의 답을 적어둔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도 맞출 수 없는 로또 번호 같은 것인지도 좀 애매해진다.

마음 속에 정답을 가지고 산다는 건 외부 세계를 정답과 오답으로 나누어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내 정답지는 쓸데없이 엄격해서 나는 끝없이 오답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계속 오답 판정을 내리다 보면 처음에는 정답을 맞추지 못하는 상대에게 화가 나지만, 결국엔 바라는 것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 나 자신에게 계속 화를 내다 보면 어느 새 가슴에 멍이 들어 버린다.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정답들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탓에 나는 상대와 나에게 계속해서 오답 판정을 내리는 실수를 했었다. 틀렸다는 소리만 듣던 상대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등졌다. 그런 실수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그 어떤 정답도 마음 속에 품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 정답이 생각나도 그걸 지워내려 무던히도 애썼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려 노력했고,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는 정답이 생기면 조금의 시간 차가 생기더라도 어떻게든 전달하려 노력했다.


열심히 노력해왔다고, 그래서 잘 꾸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내 마음이 시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마음 속 정답은 어쩌면 그냥 자연스러운 욕망이었을 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그 마음을 굳이 말라죽게 두었던 걸까. 사실 내가 해야 했던 건 욕망을 가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욕망을 표현하려는 노력 아니었을까. 각자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조율하는 것이야말로 같이 살을 부비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일 텐데,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하는 것일 텐데,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는 정말 습관처럼 껍데기가 되어 버린다. 옷장 속에 갇힌 여섯살 꼬마의 기분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면 이러 저러해서 들어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데, 나는 굳이 그걸 다 들어주고 그 이후 그 사람을 슬금슬금 피하는 식으로 거리를 벌린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기에, 그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조차 할 수 없다. 그건 상대에게 잔인한 만큼 스스로에게도 잔인한 짓이다. 상대를 끊어내는 것만큼, 상대에게서 거리를 두는 것만큼, 나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자주 외롭다. 마음 속에 메워지지 않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도너츠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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