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을 지나 도쿄대까지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을 봤다. 검은 고양이의 집, 이라고 써 있던 귀여운 간판. 얼마나 많은 책이 어떤 배열로 들어차 있을까? 이런 저런 모습을 상상하며 건물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번엔 어디를 가 볼까 하며 지도를 보니 근처에 도쿄대가 있네. 걷기엔 좀 먼 거리인 듯 했지만 그냥 부지런히 걷기로 했다. 나는 심한 길치인 데다가 산책의 경로도 충동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우연히 걷게 된 산책길을 나중에 다시 걷게 될 확률은 0에 수렴한다.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처음 걷는 산책길은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걷게 된다.
그렇게 천천히 걷게 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구약소 그러니까 동사무소에서 마련해 둔 게시판에는 은근히 재밌는 게 많이 붙어 있다. 비둘기 똥이 건조해지면서 날리는 가루가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니 주의하라는 안내, 늙은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사는 노하우에 대한 강연, 에스페란토어 보급을 위해 힘쓰는 협회에서 마련한 강좌, 아빠와 함께 하는 축구 교실, 차근차근 배워봅시다 휘파람 레슨, ... 종이가 찢어져 한 쪽 귀퉁이만 겨우 붙어 있는 홍보물을 보면 압정을 뽑아낸 뒤 꾹꾹 고쳐 박아 준다. 헨젤과 그레텔이 지나간 산책길에 과자 조각이 떨어져 있다면, 내가 지나간 산책길에는 힘주어 꾹꾹 고쳐 박은 홍보물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게시판에 딱 달라 붙어 있는 그 홍보물들이 내가 그 곳을 지나갔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각기 다른 모양의 단독주택이 빼곡히 들어찬 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는 집집마다 널어 둔 빨래일 것이다. 햇빛에 보송보송 말라가고 있는 축구화를 보면,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힘차게 인사하고 학교로 향하는 새카만 얼굴의 밤톨머리를 한 중학생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리고 또 가끔은 애완동물의 옷이, 햇빛이 유난히 좋은 날에는 커다란 이불이 널리기도 한다. 적당한 햇빛에 말라가는 빨래를 보면, 바싹 마른 빨래에 코를 박고 킁킁대다 잠이 드는 상상을 하게 된다. 햇볕을 받으며 잠깐 자는 낮잠만큼 달콤한 것도 없지.
걷다보니 어느 새 도쿄대에 도착했다. 열려있는 쪽문으로 들어가려다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문장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울타리의 안쪽에서 바라보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문장은 누군가를 밀어내기에는 참 약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울타리 바깥에서 들어가보려는 입장에서 맞닥뜨린 '외부인 출입금지'는 무척이나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진다. 결국 그 쪽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대학교 주변을 빙빙 돌았다. 두 개의 쪽문을 지나쳐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정문 부근에 도착했다. '난 외부인이 아니야. 2학기부터 교환학생으로 여길 다닐 건데 그냥 미리 한 번 견학 온 거야.' 물어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디테일한 설정을 하며 정문을 지났다. 정작 학교 안으로 들어오니 가족 단위로 놀러온 사람들이 많아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일단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사실 예전에 친구랑 한 번 도쿄대 캠퍼스에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친구는 대학원생이었는데 도쿄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어떤 책을 보고 싶어 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 책을 보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도는 물론 아니었다. 굳이 표현해보자면 '아, 맞다. 여기 그 책 있을 텐데...' 정도였달까. 그래도 일본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멀리에서 와준 건데... 라는 생각에 다짜고짜 도서관에 가서 물어봤다. 헌데 도서관 사서가 의외로 굉장히 친절했다. 검색을 하더니 그 책은 대학원 과사무실에 있다면서.. 무려 거기로 전화를 걸어준 것이다. 당시 과사무실에 있던 조교도 몹시 친절한 사람이라서 도서관에서 우리를 픽업해 과사무실도 구경시켜주고 그 책도 직접 꺼내 보여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전부 얼떨떨한 기억이다. 지금의 나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한 문장에도 이렇게 쪼그라드는데.. 그 때의 패기는 대체 뭐였을까.
단단한 사탕을 핥듯 그 때와 지금의 차이에 대한 물음표를 할짝대다보니 짐작 가는 이유가 하나 떠올랐다. 그 때의 나는 친구와 함께였다. 친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 움직였던 것이다. 정작 나를 위해서라면 조용히 지나갔을 상황에서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움직이고 말걸고 세상이랑 친한 척 하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그렇게 세상이랑 친한 척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세상과 한 뼘은 더 친해져버린다는 것. 어쩌면 용기 낼 핑계가 되어 줄 다른 사람이 여기에 없어서, 그러니까 모두와 격리된 채 그냥 나 혼자 지내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쪼그라들고 있는 걸 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캠퍼스를 뱅글뱅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