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고 무거운 이야기, 그리고 번거로운 대화
S가 맥북 프로를 사겠다며 일본에 왔다. 그래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S의 페북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댓글이 잔뜩 달려 있었다. 너 그거 사러 일본 정말 갔네, 대단하다, 나 대신 여기 좀 가줘, ... 그런 곳에 쉽사리 댓글을 남기지 못하는 나는 그걸 보며 얘 친한 친구 많네.. 라고 생각했다. 옛날에는 그 생각만으로도 좀 샐쭉해졌을 테지만 이제는 "야, 뭐냐! 너 친구들이 너 영웅 취급하네!"라고 말했다. S는 내 얘기를 듣고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여기 오기 전날 마음 같은 건 모르잖아."라고 대답했다. 그건 샐쭉해진 나를 위로하려 꺼낸 얘기라기보다는 수박 겉핥기식 사교가 갖는 한계에 대한 얘기였을 거라 생각한다.
뭐,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말인지 일단 제쳐두고 생각해보자면 그의 진술 자체는 사실이다. 나는 S가 한 번 일본에 올 마음을 먹었다가 알 수 없는 감정에 발목을 잡혀 포기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건 페북에 댓글을 단 사람들은 모르는 사실이다. 난 S가 오늘 아침 무엇을 했고, 어떤 동선으로 움직였으며,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안다. 내가 S랑 그렇게 가까운 사이냐고? 아니, 그냥, 그 날 점심 먹으면서 그런 얘기를 했거든. 굳이 페북에 남길 정도도 되지 않는 하찮은 얘기도 나눴고 갑자기 페북에 남기기에는 좀 무거운 얘기도 나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쩌면 그런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어디에도 남기지 않을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것. 내 머릿 속에 잠시 머무르다 사라질 운명의 이야기를 뱉어 놓고 같이 잠깐 바라보다가 곧 정답게 까먹어버리는 것.
지금의 나는 페북 속 S의 친구들보다 S와 가까이 있다. 우리가 나눈 하찮은 이야기들의 누적분, 딱 그만큼 가까이 있다. 우리의 하찮은 이야기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개된 장소에 전시되는 사교를 딱히 부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나는 나에게 흘러오는 사소한 이야기들은 그다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텅 비어있는 공개된 사교에 괜시리 마음을 다친다. 그런 사교를 왕성하게 하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그냥 그 자체에 상처만 받는다.
내가 그 텅 빈 사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그런 무의미한 사교는 네가 엄청나게 무시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상처를 받니?' 에헤이, 모르시는 말씀. 상처를 받으니까, 그거에 너무 많이 상처를 받으니까 무시하고 싶은 겁니다. '너 따윈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겁니다. 그치만 일부러 강한 척 하며 이상한 거리를 벌려둬봐야 상처에 취약한 체질 자체가 개선되는 건 아니지. 이제는 슬슬 질문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좀 든다. 텅 빈 사교라는 건 맞아. 그 생각 자체에는 동의해. 그런데 그 텅 빈 사교가 왜 나에게 상처가 되는 걸까? 그게 나의 어느 부분을 자극하는 걸까?
꽤나 예전의 일이다. 어떤 사람과 우연히 메신저를 하다가, 그 사람으로부터 어쩌면 술집에서 노래를 틀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알려달라고 했고, 그 사람은 알겠다고 했다. 얼마 후 그 사람의 블로그에 모월모일 모처에서 노래를 틀게 되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그걸 보고 나서도 기다렸다. 그 사람이 나에게 직접 말해주기를. 하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넌 내 블로그 보잖아, 그래서 결국 알게 됐잖아, 뭐가 문제야? 꼭 직접 얘기해야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 그치만 내가 바란 건 나에게 직접 얘기해주는 거였다. 아, 맞아, 얘한테 알려주기로 했지, 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나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그 번거로운 과정이야말로, 그 사람과 나 사이에 길을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건 뭐 아무래도 상관없고, 그래서 텅 빈 사교를 내가 무시하는 것도, 이렇게 의미 없는 문장 쪼가리나 혼자 쓰고 있는 내 인생을 내가 비관하는 것도, 글보다는 말과 친한 여름산 같은 사람을 동경하는 것도, 다 알겠는데, 텅 빈 사교가 나에게 상처가 되는 건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정말 어두운 게 있을 것 같아 선뜻 열지 못하는 상자가 내 앞에 있는 기분이다.
(2013. 10. 31.)
페북 계정은 비활성화 시켜둔 지 오래다. 저 때보다는 덜 외롭고, 저 때보다는 건강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의 친교는 물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맺고 있는 내가 모르는 친교에 대해서도 이제는 거의 상처를 받지 않는다. 심지어는 예전에는 왜 그런 것에서도 상처를 받았을까 의아할 정도다. 아프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지나가는 바람에도 베이고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지금은 인생을 비관하지 않는다. 여전히 겁나고 또 두려운 건 사실이지만, 과거와 같은 비관은 하지 않는다. 글보다는 말과 친한 사람들의 여름산 같은 매력은 여전히 멋지다고 생각한다.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에 대해 가졌던 혐오도 많이 사라졌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때 내가 가졌던 그 혐오는 자기 혐오가 동족 혐오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S는 그 때 산 맥북 프로를 아직도 잘 쓰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