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락 내리락 발을 구르며
터미널까지 나를 데려다 준 엄마는 다음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일하느라 못 챙겨준 게 미안해서 조금 더 같이 앉아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엄마랑 나는 대합실 티비를 등지고 앉아 나란히 벽을 보며 이런 저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엄마는 아무 것도 없이 휑한 벽에 내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는데 그게 딱히 서운하진 않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니까. 사람과 이야기 할 때 눈을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같은 곳을 보며 이야기하는 게 편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사람이 말을 하면 쳐다봐야지.'라는 말이 내게는 늘 어려웠다. 이 세상엔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고 이야기 하는 게 어려운 사람도 있으니까. 나도, 엄마도, 그런 사람. 우리는 서로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나란히 앉아 얘기했다.
터미널까지 차를 몰고 오는 길에 엄마는 그 동안 아빠 때문에 속상했던 이야기를 했다. 몸이 안 좋다고 말하면서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 지 모르겠다는 말,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길에 또 술을 사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말, 힘들게 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술 취해 자고 있는 걸 보고 화가 났다는 말, 화가 나는 한편으로 왠지 그 모습이 웃겨서 술 취해 자고 있는 아빠의 사진을 찍어두었다는 말도 했다. 나는 엄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내가 아주 예전에 엄마에게 해줬어야 하는, 그렇지만 하지 못했던, 맞장구.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 지 모르겠다고, 몸을 망쳐가면서까지 마실 정도로 술이 좋을까 싶다고, 술을 마실 거면 아픈 내색이나 하지 말지, 내 몸 멀쩡하니까 술 마셔도 괜찮아- 라 큰소리나 치든지, 술 깨면 여기 저기 아프다 죽겠다 앓는 소리로 옆에 있는 사람 불안하게 하면서, 간 죽어나는 건 생각도 안 하고 독한 술에 독한 약에.. 왜 그렇게 몸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나의 추임새에 힘입어 아빠 흉을 한참 본 엄마는 이런 말도 했다. '술 좋아하는 것만 빼면 참 괜찮은 사람인데 말이야.' 나는 엄마가 지나가듯 흘린 그 말을 주워서 날카로운 조각칼로 내 마음 어귀에 새겨두었다.
마음에 엄마의 말을 새긴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말은 '너까지 그러면 아빠가 슬퍼할 거야' 였다. 엄마가 또 아빠 험담을 하던 어느 날의 일이다. 맞장구를 쳐야 한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나는 엄마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딴에는 열심히 험담을 했다. 헌데 어찌 저찌 하다 보니 엄마가 늘어놓는 험담의 수위보다 훨씬 센 수위로 아빠의 험담을 하게 되어 버렸다. 엄마는 그 때 내 이야기를 듣고 그랬다. '야, 그래도 너까지 그러면 아빠가 슬퍼할 거야.' 뭐야, 왜 엄마는 하면서 나한텐 하지 말라고 해? 하는 생각을 하며 발끈할 법도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내심 기뻤다. 엄마가 아빠 편을 들어주는 말을 처음 들어본 거였으니까. 엄마가 아빠를 딱하게 생각한다는 게 나는 참 반가웠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잘 새겨두었다.
터미널로 가는 차 안에서 또 어떤 이야기를 했더라. 아, 엄마는 나에게 회사에 다닌 게 올해로 몇 년이 되었냐고 물었다. 헤아려보니 햇수로는 9년째. 돈은 얼마나 모았냐고 하길래 1억까지는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왠지 엄마를 실망시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부랴부랴 말을 덧댔다. 내가 돈을 막 악착같이 모으는 타입도 아니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래서 그런 것 같다고. 그나마 내가 쇼핑에 취미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내 말을 다 들은 엄마는 집에 생활비 보내주고 빚 갚고 그래서 그런가봐, 하고 말했다. 그 말 어디에도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지만 나는 엄마의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미안함이었다.
세상엔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을 좀처럼 꺼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엄마가 그렇고, 내가 그렇다. 그런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미안해라는 그 간단한 말을 쉽사리 하지 못해서 변두리만 속절없이 빙빙 도는 사람에게 '에이 미안해서 그래? 괜찮아.' 라고 다정하게 토닥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 역시 그리 능숙한 사람은 아니라서 행간에 놓인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게 고작이다. 그래도 예전보단 나아졌다. 예전엔 그 행간의 마음조차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마 예전에 같은 말을 들었더라면, 돈을 조금밖에 못 모았다고 지금 눈치 주는 건가.. 하는 생각에 괜히 주눅 들었겠지.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마음 속에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그러느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살피지 못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다. 예전에는 나 역시 미안하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만큼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확실히 말해주길 바라기도 했으니까.
(2016. 5. 14.)
내 마음에 그 두 개의 문장을 새기면서 당시 했던 생각은 '엄마가 아빠를 미워하는 것만은 아니구나.'하는 게 고작이었다. 즉, 그 때 내가 했던 생각에서도 '나의 역할'은 쏙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 문장을 불러낸 건 사실 내 맞장구였다. 엄마가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놓을 때 나는 그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감정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엄마와 가장 먼 곳에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맞장구의 긍정적 기능을 깨달은 후에는 엄마의 감정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늘 먼 곳에 서 있던 내가 엄마에게 성큼 다가가자, 엄마는 스스로 균형을 잡기 시작하더라.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쉽사리 엄마 쪽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이 강해지는 걸 느낄 수록 나는 엄마로부터 멀리 떨어지려 했다. 일종의 시소게임이었다. 나는 그게 균형을 잡는 방법이라 생각했고, 그게 엄마를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무사히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한 번 중심을 잃으면 엄마는 걷잡을 수 없이 아래로 떨어져 결국엔 두 번 다시 올라오지 못할 거라는 불안함이 내게는 있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에도 결국엔 끝이 찾아 온다는 걸, 바닥을 딛고 나면 한 번 더 물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걸, 그렇게 많이 경험했으면서 왜 나는 잊고 있었을까.
중심을 잃고 내려가기 시작한 시소가 다시 올라오려면 일단 최저점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 발을 구르며 힘차게 올라올 수 있지. 나는 늘 엄마의 반대쪽에 앉아 시소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글쎄. 나는 두 가지의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 시소는 누가 더 균형을 오래 유지하느냐를 겨루는 놀이기구가 아니다. 오르락 내리락 신나게 발을 구르는 놀이기구다. 그러니 불안한 균형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 둘째, 자리선정을 잘못했다. 나는 엄마의 반대 쪽이 아닌, 같은 쪽에 앉아야 했다. 우리 반대 쪽에 앉아 있는 건 언제나 시간과 인생이니까.
우리는 시간과 인생을 상대로 발을 구르며 시소를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