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수 있고, 견딜 수 있는

내 중심을 무너뜨리는 용기

by 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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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예전에 비해 나빠지기만 한 건 아니다.


회사에 다니며, 그러니까 조직에서 어떠한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계속 놓이며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혼자서 모든 걸 해낼 수는 없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도와달라고 하면 대개의 경우 도움 받을 수 있다, 같은 것들.


그 동안 나에게 '타인'이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눈치를 봐야 하고, 민폐를 끼치면 안 되고, 즐겁게 해 줘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래서일까. 회사를 다니며 '아, 다른 사람에게 기대도 괜찮은 거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을 때에는 내 안에 잃어버린 세계를 발견한 것마냥 기뻤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기 위해서는 내 무게를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단 내 중심을 무너뜨릴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자기 발로 서 있어야 한다는 고집이나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 없다. 백석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그 드물다는 굳세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고 살아간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 아니, 잘 생각해보면 꼿꼿하게 서 있는 갈매나무도 햇빛과 대지와 바람에는 기대고 있지 않은가.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려 애 쓰며 살아왔던 그 시간은 다른 누구도 나에게 기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벽을 둘러치며 사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기대며 살아가는 연습을 조금 일찍부터 했다면,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기대야 하는지,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대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는 것들을 지금보다는 더 잘 알았을 텐데. 그렇게 많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배웠더라면 지금보다는 '기대는 것'에 대해 더 잘 알았을 텐데. 그랬다면 내가 정말 기댈 사람이 간절히 필요했을 때,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를 줄이려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야.'하는 말로 마음을 추스려 본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잘 기대며 살고 싶고, 소중한 사람이 나에게 기대어 올 때 그 무게를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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