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하고 유난스럽지 않은 변화
서쪽 하늘을 주황색으로 물들인 해가 지평선 아래로 뚝 떨어지고 나면 어스름한 푸른색의 하늘이 조금씩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두워진다. 나는 그맘때의 하늘을 무척 좋아한다. 약간의 끈기만 있다면 아주 드라마틱한 변화를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간판이나 가로등에 일제히 불이 들어오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 날에는 낮과 밤의 이음새를 발견한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다. 해가 저문 뒤 조금씩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지켜볼 때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들여 진득하게 하늘을 바라본 사람에게만 보이는 낮과 밤의 이음새를 내가 찾아낸 것 같아 무척 뿌듯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있던 하늘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반짝-하고 빛난다. 별들의 반짝임은 하늘 이 곳 저 곳을 천천히 수놓기 시작한다. 그 반짝이는 순간을 음미하는 사이에 어스름한 푸른색의 하늘은 새카매진다. 나는 그 자연스러운 변화를 지켜보는 게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지켜봤으면서도 결국에는 '아니 벌써?' '언제 저렇게?'라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그 은근하고 유난스럽지 않은 변화가 좋다.
대부분의 만들어진 이야기에는 사건이 존재한다. 이야기 속 인물은 사건을 통해 각성하고 노력하며 좌절 끝에 성장한다. 가공된 이야기는 일종의 압축파일이라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명확하다. 거기에 '아니 벌써?' '언제 저렇게?'라는 말이 끼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이야기 속 모든 장치는 '인물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 의해 가공된 이야기가 아니야. 그래서 군더더기 투성이다.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털어낸 줄로만 알았던 과거에 발목을 잡혀 넘어진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똑같은 곳을 계속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함이 들 때 매끈하게 압축된 이야기 속 인물은 오히려 괜한 자괴감만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막연한 불안함에 마음이 어려울 때는 오히려 책을 덮는다. 그런 불안함에 사로잡혀 있을 때 위로가 되는 건 은근하고 유난스럽지 않게 천천히 변해가는 자연의 풍경이다. 해가 뜨고 질 무렵의 하늘, 봄을 준비하는 꽃봉오리, 가을을 물들이는 빨갛고 노란 나뭇잎, ... 그 중에서도 해가 뜨고 질 무렵의 하늘은 계절과 상관없이 매일 만날 수 있는 위안이다.
그래서 오늘도 해질 무렵의 하늘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