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야, 하마터면 친구가 생길 뻔 했어."
어린왕자가 만난 술고래 아저씨는 계속 술만 마시고 있었다. 어린왕자가 물었다. "아저씬 왜 그렇게 술을 마셔?" 아저씨는 대답했다. "부끄러워서 그래."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데?"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어린왕자는 '어른들은 참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군'이라고 고개를 갸웃대며 별을 떠났다. 이야기는 어린왕자와 함께 술고래 아저씨의 별을 떠나 사업가의 별을 찾아가지만, 나는 술고래 아저씨의 별에 조금 더 남기로 한다. 아저씨는 자신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대며 떠난 어린왕자를 생각하며 술을 마시고 있다. 아저씨는 술잔과 술잔 사이에 한숨을 깊게 내쉬었고, 술냄새 가득한 그 한숨은 금세 안개가 되었다. 어떤 것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그 안개 속에서 아저씨는 안전한 상상으로 마음을 달래며 술을 마셨다. 나는 아저씨의 그 마음을 좀 알 것 같다.
어린왕자가 방문한 별 중에는 어쩌면 외로워지는 게 싫어서 늘 혼자 지내는 외톨이 아저씨의 별 같은 것도 있었을 지 모른다. 외톨이 아저씨는 "아저씨 안녕? 여기는 무슨 별이야?"하고 인사하는 어린왕자를 못 본 체 하며 먼 하늘만 바라본다. 자기의 목소리가 충분히 크지 않았던 거라 생각한 어린왕자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한 번 묻는다. "아! 저! 씨! 안! 녕!? 여! 기! 는! 무! 슨! 별! 이! 야?!" 그래도 아저씨는 기척 없이 제 할 일만 할 뿐이다. 포기를 모른 채 몇 번이나 되묻던 어린왕자도 결국엔 아픈 목을 부여잡고 시무룩하게 떠나간다. 어린왕자가 새떼들과 함께 완전히 떠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한 외톨이 아저씨는 그제서야 좀 편안한 얼굴로 이렇게 중얼댄다. "다행이야, 하마터면 친구가 생길 뻔 했어." 내 마음과 달리 제멋대로 자꾸 쾅쾅 닫히기만 하는 마음 때문에, 내 마음처럼 안 되는 내 마음 때문에 울고 싶어질 때에는 헤어지는 게 싫어 만나지도 않는 외톨이 아저씨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 날 닮은 아저씨를 생각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존재를 상상하며 위안을 구한다.
내 마음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닫혀 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닫혀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그냥 겁이 좀 많고, 또 울고 싶은 순간이 많을 뿐이다. 그렇다고 늘 울고 싶은 건 아니다. 그걸 알기에 지금을 견딜 수 있다. 마음음이 닫혀 있을 때는 "다행이야, 하마터면 친구가 생길 뻔 했어."라 중얼대는 외톨이 아저씨를 상상하지만, 기분이 좀 포근해지면 어린왕자가 외톨이 아저씨를 다시 찾아오는 상상을 한다. "다행이야, 하마터면 친구가 생길 뻔 했어."하고 안도하며 돌아서는 외톨이 아저씨 앞에 눈을 동그랗게 뜬 어린왕자가 서 있다. 당황하는 외톨이 아저씨를 향해 스케치북을 들어서 보여주는데 거기엔 이렇게 써 있다. '근데 아저씨, 혹시 말을 못해? 그러면 우리 글로 대화할까?'
외톨이 아저씨가 당황하는 것 정도는 자신이 알 바 아니라는 듯, 어린왕자는 외톨이 아저씨 옆에 엎드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린다. 여태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북에 그리며 외톨이 아저씨에게 종알 종알 말을 건다. "내가 제일 좋았던 별은 가로등에 불을 켜는 아저씨가 살던 별이야. 그 아저씨는 굉장히 일을 열심히 하는 아저씨였는데 피곤해보였어. 원래는 하루에 한 번씩만 켰다 껐다 하면 됐는데 지금은 별이 점점 빨리 도는 바람에 1분에 한 번씩 켰다 껐다 해야 한대. ... "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노력하던 외톨이 아저씨도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산들바람 같은 이야기에 슬며시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마음은 아직도 잠겨 있고 입술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지만 그의 귀는 살짝 열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보아뱀이 삼킨 코끼리와 상자 속에 숨어 있는 양을 찾아내는 어린왕자 눈에는 그 작은 변화가 보인다.
한바탕 이야기를 쏟아 낸 어린왕자는 하품을 몇 번 크게 하더니 크레파스를 쥔 채 새근새근 잠이 들어 버린다. 밤이슬이 내려 앉은 외톨이 아저씨의 별은 쌀쌀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누군가와 함께 있어본 적이 없는 외톨이 아저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다가 잠결에 콜록대는 어린왕자의 기침 소리를 듣고는 허둥지둥 제 겉옷을 벗어 덮어준다. 그리고 어린왕자의 스케치북을 들여다본다. 스케치북에 담긴 많은 세상과 많은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보며 아저씨는 슬며시 웃고 또 운다.
외톨이 아저씨는 이제 어떻게 될까? 그건 순전히 내 기분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