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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Nov 10. 2018

뉴트리노와 플루토

사랑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영어 이름을 짓는다면 뉴트리노라고 지어볼까? 


뉴트리노는 그 어떤 것과도 반응하지 않고, 유령처럼 지나가버리는 입자다. 그 어떤 것과 마주쳐도, 그러니까 물, 사람, 매미, 고양이, 솜사탕, 봄바람, 허수아비, 얼음조각, 비누방울, 대관람차, ... 같은 것은 물론, 그 모든 걸 품고 있는 지구와도 인사 한 마디 나누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당연하다는 듯 슬퍼진다. 초당 수십조개의 뉴트리노가 사람의 몸을 통과하는데 사람은 그걸 모른다. 초당 수십조개의 서운한 생각을 하는 내가 사람들을 지나치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꾸역꾸역 살고 있는 것은 순전히 과학자들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발견하지도 못한 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어떻게든 발견하려 애쓴다. 개중에는 인생을 쏟아 부었지만 유의미한 발견을 하지 못한 학자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거기에 속하겠지.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대 학자들은 자신이 경험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자기 몫을 해낸 것이라 생각한다. 아아,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힘겹지만 이것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모르겠다는 듯 우직하고 미련하게 사는 사람들이 좋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떼는 그 진중한 한 걸음 한 걸음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이 걷는 걸 넋 놓고 바라보느라 정작 내 발로 걷는 법을 잊은 지 오래라는 사실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뉴트리노의 흔적을 찾는 물리학자들에게서 사랑을 느낀다는 말을 하자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과학자들만큼 비정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며 사랑을 듬뿍 주는 것 같아 보이다가도 자신들이 생각한 정의와 맞지 않으면 대번에 이름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라고. 참고로 친구의 영어 이름은 플루토다. 음, 플루토의 섭섭한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나는 플루토의 이름을 빼앗아버린 과학자들의 냉정한 처사 역시 사랑의 소산이라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친구와 나의 견해가 다른 것뿐이다. 


사랑에 있어 방향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스칼라가 아닌, 벡터로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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