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연보를 읽고
다자이 오사무의 말년엔 여자가 세 명 있었어. 두 번째 아내인 이시하라 미치코. 대웅산장에 거주하던 오오타 시즈코. 함께 목숨을 끊은 야마자키 토미에. <인간실격>은 1948년 3월에 각혈을 하며 집필한 작품이야. 토미에의 시중을 받으며 글을 써내려간 그는 결국 3개월 뒤, 토미에와 함께 목숨을 끊어 버리지. 다자이 오사무는 그렇게 여러 여자를 만났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100%의 마음으로 즐겁지는 않았을 거야. 도덕적 잣대는 높으면서 스스로를 굉장히 낮게 포지셔닝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위무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스스로를 경멸했겠지. 그런 마음이었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마음이 짠하더라.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한편으로 존재 자체가 아예 지워져 버린 여자들에 대한 생각도 했어. 그래서 연보를 더 꼼꼼하게 봤지. 다자이 오사무의 연보 속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여자들의 이름을 열심히 보다가 우연히 '紅子베니코'라는 이름을 보게 됐어. 베니코는 다자이 오사무가 열여덟살에 만난 기생이야. 다자이 오사무는 21살에 베니코와 결혼을 하고 28살에 헤어져. 그 사이 다자이는 무려 네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지. 맨 처음에는 지주계급인 자신을 혐오하며 한 번(20세), 카페에서 만난 다나베 아츠미라는 여자와 동반자살시도 한 번(21세), 신문사 입사 시험 낙방하고 한 번(26세), 베니코의 잘못으로 동반자살 시도 한 번(28세). 28살의 저 자살 실패 이후 둘은 헤어지게 돼. 다자이는 다음 해 이시하라 미치코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지. 연보에서 사라졌던 베니코는 1944년, 그러니까 다자이 오사무가 35살이었을 때의 기록에 한 줄로 등장해. 전처 오야마 하츠요. 중국 청도에서 병사.
그 한 줄을 읽고는 마음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어. 뭔가 복잡한 기분이 들더라구. 그래서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연보를 베니코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읽어봤어. 베니코와 다자이가 처음 만난 건 아오모리의 술집이더라. 베니코는 그 때 거기 기생이었고. 베니코는 술집을 드나들던 18살짜리 고등학생 손님과 만나 그가 21살이 되던 해 결혼을 약속해. (그 때 베니코가 몇 살이었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어. 지금 내 손에 주어진 건 다자이 오사무의 연보잖아. 나는 다자이 오사무 기준으로 분절된 시간 속에 박제된 베니코를 만날 수 있을 뿐이야.) 그런데 이 남자가 결혼을 약속해놓고는 죽어버리겠다면서 딴 여자를 끌어안고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네? 같이 뛰어 든 여자는 죽었지만 다자이는 목숨을 건져.
베니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이와 결혼을 해.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어. 다자이 26살에 신문사 입사시험에 실패하고는 가마쿠라 산에 올라가 죽겠다고 목을 맸어. 결국 미수에 그쳐 다시 돌아왔지만 말야. 어떤 식으로 실패한 걸지 궁금해. 혼절해서 늘어져있는 걸 심마니가 발견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버둥대다가 줄이 툭 끊어지는 바람에 머쓱하게 자기 발로 산을 내려왔을까. 하지만 제일 궁금한 건 베니코의 마음이야. 남편이 자기를 두고 목숨을 한 번 더 끊으려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베니코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자이의 네 번째 자살시도는 바로 아내인 베니코의 잘못 때문이래. 연보에는 '과실'이라고만 나와 있었고, 자세한 내용은 없었지만 어떤 단편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 것 같아. 아내는 잘못을 고백했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온천으로 함께 죽으러 갔다, 는 내용의 구절을. 그렇지만 다자이도 베니코도 죽지 않았어. 두 사람의 목숨 대신 죽은 건 두 사람의 관계였던 걸까. 결국 그 후 둘은 헤어져. 그리고 베니코는 중국 청도에서 병으로 죽게 되지. 그 7년의 시간 동안 베니코는 어떤 일을 겪었을까. 어떤 사람을 만났을까.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나 아렌트가 이런 말을 했대.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베니코는 어떻게 슬픔을 견뎠을까. 그녀 역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슬픔을 견뎠을까. 번듯한 소설이나 활자를 뒤집어쓴 편지의 형식까지는 갖추지 못했더라도, 그러니까 그냥 신세한탄에 불과할 지라도 그런 식으로나마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다가 죽은 거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렇지 않다면 너무 마음이 아프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