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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Dec 03. 2018

말들이 날뛰게 내버려 두지 마

말이 무서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영화 <미녀와 야수> 중 유독 마음에 남은 장면이 있다. 


벨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야수의 감옥에 자진하여 들어갔다. 아버지를 구할 수 있어 다행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잃어버린 자유가 아쉽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벨은 야수가 미웠다. 자기와 아버지의 평화로운 하루를 망쳐놓은 야수야말로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벨이 이렇게 분노에 몸을 떨고 있을 때 야수의 성에 사는 시중들은 가벼운 흥분에 몸을 떨었다. 그들은 벨이 바로 그 여자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스터와 사랑에 빠질, 그래서 마스터를 포함한 그 성 모든 사람들을 끔찍한 저주로부터 구해줄 여자. 그래서 그들은 야수를 부추겼다. 저녁 시간에 벨을 초대하라고.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야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벨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벨은 감옥에 가둬놓고 기껏 한다는 말이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거냐고 비웃으며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그녀의 거절에 야수는 자기 나름의 상처를 받았다. 그렇게 둘 사이에 날카로운 말이 몇 차례 더 오고 갔다. 야수는 결국 "나랑 같이 밥 안 먹으면 여기서 굶어 죽을 줄 알아." 라는 협박을 남기고 자리를 떠버렸다.

혼자 있는 벨에게 미세스 팟이 다가와 차를 권했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벨의 걱정을 찬찬히 들어준 다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밥을 든든하게 먹으면 기분이 좀 더 나아질 거라고, 그러니 일단 저녁을 먹자고. 벨은 고개를 저으며 야수의 마지막 협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그랬어요. 자기랑 같이 밥 안 먹을 거면 여기서 굶어 죽을 줄 알라고." 그 얘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벨. 그런 벨을 보며 미세스 팟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아무 말이나 막 해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지, 아니면 그냥 흘려 넘길지의 선택은 우리가 하는 거죠." 




나는 다른 사람의 작은 말실수에도 필요 이상의 상처를 받으며 살아 왔다. '격앙된 감정으로 말하다 보니 과장된 표현이 튀어나온 거겠지. 진심은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얼떨결에 진심이 튀어나온 거야. 속으로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세상에...'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뭐, 사람이 살다보면 말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말실수는 다른 사람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니까 절대로 하면 안 돼.'라는 다짐을 하게 됐다. 


가급적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 조심하는 건 물론 대견한 노력이지만, 내 경우에는 그 노력의 도가 좀 지나쳤다. 조금이라도 예민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게 되었으니까. 핑계 없는 무덤 없듯 조개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나는 무섭고 또 두려웠다. 상대에게 무해한 말만 건네고 싶은 소망과 달리, 내 마음 속 유해한 생각들이 엉겁결에 튀어나오면 어쩌나, 혹시라도 상대가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나에게 '말'은 무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종 위험물질을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언제나 무해한 말' 같은 게 과연 가능할까?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온 유해한 말로부터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미세스 팟의 생각은 달랐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뱉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지, 아니면 그냥 흘려 넘길지에 대한 선택은 듣는 사람의 몫이라는 미세스 팟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마음, 더 나아가 두 사람의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듣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태도.




'그러니 앞으로 우리 쓸데없이 말실수에 상처받지 말자. 유해한 말은 모두 흘려넘기자.' 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당연히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대충 흘려 들을 필요가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는 몹시 다양해서 그다지 귀기울일 필요 없는 상대가 있는가 하면, 피곤하더라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이렇듯 소통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그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의 친밀도와 깊이에 따라 다르다. 각기 다른 이 모든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공식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나 역시 그런 마법의 공식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말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 뿐이다. 

: 너는 지금까지 상대의 말로부터 너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겠지. 얕은 관계의 사람들과는 말을 편하게 하면서, 깊은 관계의 사람들과는 오히려 대화하기 힘들어 하는 것 역시 그래서일 거야. 가까운 사람들이 쏘아대는 화살이 너에게는 더 치명적일 테니까. 그런데 말야. 무해하기만 한 말 같은 건 세상에 없어. 네 마음 속에 유해한 생각이 가득하듯, 다른 사람 마음에도 유해한 생각이 가득할 테니까. 하지만 네 마음에 위험 물질이 있다고 해서 네가 위험한 사람은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야.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는 생각보다 멀어. 그래서 말하는 사람이 쏜 화살이 그대로 네 마음에 박히는 경우는 없단다. 알겠니? 우리는 우리 발치에 떨어진 그들의 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매번 선택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에게 날아오는 말들에게 일일이 마음 깊은 곳을 내줄 필요는 없어. 그 모든 말에 대해 너무 성실하게 응답하려 하지 마. 말들이 네 마음을 흔들도록 내버려 두지 마. 말들이 날뛰게 내버려 두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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