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블랙홀

그런 구멍이 내 마음 속에 생겨버렸어

by 둥글레

나는 휴식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일만 했다. 잠깐의 틈이 생기면 시든 꽃밭이 눈 앞에 선했고, 꽃들의 비명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시든 꽃밭의 울부짖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더욱 더 일에 매달렸다. 적어도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꽃밭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매 순간 팽창하고 있는,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어지고만 있는 우리 우주에는 거리를 메우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사막의 모래알처럼 많았다. 해도 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그 때는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내 모든 의식을 동원해 시든 꽃밭에 대한 생각을 잘라내려 했지만, 밤이 되어 의식이 몽롱해지면 꽃밭이 머리 속을 지배했다. 낮동안 계속된 의식의 칼부림 탓에 꽃밭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손발이 잘리고 허리가 반쯤은 동강난 꽃밭이 허우적대며 나를 향해 기어왔고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가려 했다. 꽃밭은 도망가려고만 하는 나를 슬픈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의식의 힘을 빌어 아름답게 단장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 진짜 기억 안 나? 여기, 네가 정말 좋아하던 곳인데. 새 꽃을 심고, 그 꽃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놀았잖아. 꽃밭에 물 쉽게 주겠다고 물길을 끌어온 것도 너고, 벼룩시장에서 물뿌리개를 사온 것도 너야. 너 여기서 놀 때 제일 행복하다고 그랬었어.”


그렇게 몇 달 밤을 꽃밭과 씨름한 끝에 나는 시들기 전 꽃밭의 모습을 간신히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과연 꽃밭이 말한 그대로였다. 나는 꽃밭에서 놀 때 제일 행복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나면 꽃밭에 엎드려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편지를 썼고,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꽃향기를 맡으며 특히 마음에 남은 장면에 각주를 달았다. 말린 꽃잎으로 포푸리를 만들었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직접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내가 일상에서 느낀 사소한 행복의 순간 하나 하나가 그 곳의 꽃이었기에 꽃밭은 나에게 행복의 다른 이름이었다. 역할이나 당위와는 거리가 먼 세계, 내가 그냥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세계.


시든 꽃밭의 정체를 깨달았던 바로 그 순간이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과 당위를 100% 성취도로 해내겠다는 무리한 욕심을 버리고, 나의 행복을 돌보는 것에도 에너지를 배분했어야 한다. 우주가 제아무리 넓다 해도 나의 행복을 신경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으니까.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아서 꽃밭이 시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내 마음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면서도 나는 100% 성취도로 해내겠다는 욕심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것에 이상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노력에 중독되어 있었다.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아니, 아예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잠깐이라도 이 곳을 돌봐달라고. 꽃밭이 몇 달 밤을 새워 보낸 편지에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은 채 또 몇 달을 보냈다. 밤마다 꽃밭의 애원을 듣는 게 싫어서 점점 더 일에 몰두했다. 새벽 두세 시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주말에도 당연하다는 듯 출근을 했다.


나는 중력이 다른 행성을 바쁘게 오가며 일했다. 어떤 개발자의 행성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중력이 강해서 나는 도착하자마자 하늘을 보고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어떤 디자이너의 행성은 주인을 따라 중력도 변덕스러워서인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땅으로 쳐박히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거의 고문에 가까운 그런 일들을 나는 아무런 불평 없이 해냈다. “이 행성은 중력이 정말 이상하네요.” 같은 말을 꺼내는 대신 마치 오래 전부터 그 곳에 살았던 사람처럼 그 곳의 중력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 들였다. 그래서일까. 일을 마칠 무렵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대단하세요. 외부인이 이 곳 중력에 이렇게 빨리 적응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데.” 나는 그러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면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런 사소한 뿌듯함을 느끼는 게 좋았던 걸까?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늘었다. 우주를 떠다니는 작은 알약 모양의 캡슐호텔에 웅크리고 누워 잠을 청한다. 비좁고 고독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곳이 낫다. 적어도 꽃밭의 잔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으니까. 너무 많은 별의 다양한 중력을 무리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인지, 몸 상태가 엉망진창이다. 내 별의 중력이 어땠는지는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한밤중에 저절로 눈이 떠진 날엔 캡슐에 달린 창문 바깥을 빼꼼 내다본다. 운이 좋을 땐, 아니 운이 나쁠 때라고 해야 할까, 뭐 어쨌든 궤도의 타이밍에 따라 창밖으로 내 별이 보일 때가 있다. 꽃밭이 시들어감에 따라 내 별 역시 점차 색을 잃어가고 있다. 유령처럼 정해진 궤도를 떠다니긴 하지만 이제는 어떤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에너지가 낮아진 별은 빛을 발하지 않는다. 내 별은 그렇게 존재감이 희미해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째 편지를 받았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진 내 별이 보낸 편지였다. “잠은 웬만하면 집에 와서 자도록.”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자기 몸을 부풀리는 약한 동물의 마음이 느껴지는 편지였다. 기세 좋은 문장 속에 웅크리고 있는 구조 요청 메시지가 뻔히 보였지만 나는 그냥 못본 체 했다. 결국 두 번째 편지에도 답장하지 않았고, 두 번째 기회 역시 그렇게 지나가버렸다.






어느 날, 중력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설명을 들었다. 아인슈타인의 설명에 의하면 별의 질량만큼 별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진다고 한다. 마주 본 두 사람이 맞잡은 커다란 보자기에 야구공 하나를 올려두면 보자기는 야구공의 무게만큼 아래로 푹 꺼지겠지. 그 보자기 위로 작은 구슬을 던지면 구슬은 야구공 쪽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이야말로 지금껏 우리가 ‘중력’으로 이해해 왔던 현상의 실체라고 설명한다. 중력하면 뉴턴의 사과만 떠올리던 내게 그건 무척 새로운 정보였다. 별의 무게 때문에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게, 그래서 언제나 직선으로 나아가는 빛마저 휘어져 버린다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답장하지 않은 두 통의 편지는 내 마음 속에서 날이 갈수록 무거워져 갔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 스스로의 행복을 돌보지 않았다는 죄책감, 필요한 순간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굴욕감, … 어둡고 축축하고 슬픈 감정들이 편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편지 주변의 시공간이 조금씩 휘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휘어진 내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이리 저리 꼬아 듣기 시작했다. “이번 릴리즈는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네요.”라는 말이 나를 겨냥한 비난으로 들렸고, “기획서 벌써 다 됐어요? 지난 번보다 훨씬 빨리 완성됐네요.” 라는 감사의 인사를 들으면서도 상처를 받았다. 저 말의 행간에서 “(고마워요. 정말 수고했어요.)”라는 말보다는 “(앞으로도 빨리 해. 일 좀 제대로 하라고.)”라는 말을 읽어낼 정도로 마음이 휘어져 있었던 것이다.


휘어진 마음이 불러들인 어둡고 축축하고 슬픈 감정만큼의 무게가 편지에 더해졌다. 마음의 보자기 위에 놓인 두 통의 편지는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만 갔다. 얼핏 봐서는 편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보자기 위에 깊은 골짜기가 생겼다. 그대로 버티고 서 있다가는 보자기가 찢어질 판국이라 마주 본 두 사람이 한 발자국씩 앞으로 다가왔고, 내 마음은 그렇게 조금씩 작아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는 무거워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는 내 마음이 작아졌다는 사실마저도 슬픔으로 느껴졌다. 슬픔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처럼 모든 것에서 슬픔을 보았다.


이렇게 편지가 계속 무거워지다가는 보자기에 구멍이 뚫리듯 내 마음에도 구멍이 뚫려 버리는 게 아닐까. 밝은 빛마저도 전부 집어 삼키는 블랙홀처럼 내 마음 속 구멍도 모든 긍정적이고 따뜻한 것들, 그러니까 사랑이나 희망이나 꿈 같은 것들을 전부 집어 삼키지는 않을까. 한참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불길한 예언처럼 느껴지곤 했다. 슬픔 필터가 불안 필터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찬송가를 부르듯 간절한 마음으로 비틀즈의 픽싱 어 홀을 불러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위대한 영국 남자 네 명이 달라 붙어도 고칠 수 없는 구멍. 모든 긍정적인 것들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나가버리는 그런 구멍. ‘어쩌면 그런 구멍이 내 마음 속에 생겨버린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 질문은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어느 새 그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그런 구멍이 내 마음 속에 생겨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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