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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Jan 02. 2019

연약한 마음

서툴러도 조금씩 쓰다듬다 보면 


타고난 팔자대로 사는 거라 말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내 귀에는 그게 꼭 '나는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라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엄마는 강박적으로 밝은 이야기만 하다가,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면 그제서야 어둡고 힘든 이야기를 조금씩 한다. 


나는 그 한탄을 세련되게 혹은 여유있게 받아줄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엄마가 약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슬슬 대화를 끝내버린다. 대화의 문을 닫는 내 마음은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다. 엄마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해서 날 힘들게 하는 거야, 옛날에 더 힘들었을 땐 그런 얘기 한 번도 한 적 없었으면서, 나한테는 힘든 이야기 하지 말라고, ...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나의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엄마를 외롭게 해 왔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한다. 엄마가 지금에야 비로소 이런 저런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건, 이제야 마음이 그만큼이나마 열렸다는 증거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런 이야기들에는 어떻게 대꾸해야 할 지 잘 모르겠는걸.


내 마음 속 약하고 더럽고 슬픈 이야기를 모두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해왔지만, 정작 그 이야기의 청자로서의 나를 상상해 본 적은 없다. '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만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으로 많은 것을 미루고 또 피해왔지만,  글쎄... 그 생각대로라면, 그런 이야기를 들을 만한 준비가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자신의 건강과 여유를 전부 챙긴 이후에야 비로소 누군가의 약한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있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이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동작하지 않는다. 당황스러우면 당황스러운 대로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서툴면 서툰 대로 어쨌든 누군가의 약한 마음을 쓰다듬어 주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약함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관건은, 지금 내 앞에 놓인 연약한 마음을 못본 체 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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