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글레 Jan 07. 2019

개구리의 관찰

이렇게 쉽게 녹아 버리는 얼음이었나?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점심에 밥을 거르고 달리기를 했다. 부끄러운 빠르기로 부끄러운 거리를 달렸지만, 그래도 땀은 실컷 흘렸다. 달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드레날린이 필요하다고.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을 찾듯, 이런 저런 호르몬의 이름을 주문 외우듯 외우고 싶었는데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호르몬 중 상황에 적절한 건 저것밖에 없었다. 아, 도파민도 불러볼 걸 그랬나. 어쨌든, 어떤 호르몬이든 좋으니까, 지금 날 좀 도와달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달렸다.


이런 저런 말이 오고 가는 회의시간 한가운데에서 나는 회복을 위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할머니가 입원한 상황 하나만 추가되었을 뿐이고, 그 외 다른 상황은 기존과 다르지 않다고. 내가 손 쓸 도리가 없는 일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자고. 돌아오는 길엔 전화 통화를 잠깐 했는데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입술을 여러 번 깨물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행복함을 느끼도록, 혹은 불행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행복함을 '느낄 것 같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나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느끼는 건 오직 그 당사자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행복함을 느끼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것에 내가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다른 사람에게 호의와 선의를 베푸는 것과 상대방이 거기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건 별개의 일이다. 거기에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과관계는 아주 얇고 연약하며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우연에 가깝다. 그러니 필연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어제 본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사랑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편안하고 행복해서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행복하든 고통스럽든 그 사람 없이 사는 게 그려지지 않는 .. 그런 게 사랑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을 쓰는 건가보다. 사랑이라는 게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도 없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버리는 그런 거라서. 뭐, 사랑이 행복 아닌 고통에 조금 더 가까이 있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쉽게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겠다.


..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곧 죽을 것 같이 힘들어 보이던 엄마가 보내는 발랄한 스티커 하나에,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마지 못해 산다 말하던 아빠가 메시지에 찍어 보내는 물결 하나에, 내 마음은 봄날에 눈 녹듯 전부 녹아버린다.  꽝꽝 얼어버린 땅 밑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폴짝 뛰어나온다. 이렇게 쉽게 녹아버리는 얼음이었니? 개구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남은 얼음 조각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약한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