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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Jan 08. 2019

토모코

조금 더 다정한 우주에서는


"토모코?"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귀여울 게 분명한 여자애가 귀여운 목소리로 토모코를 찾는다. 토모코를 찾는 목소리가 너무 경쾌해서 왠지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여자애에게 지금 필요한 건 토모코인데 나는 토모코가 아니지. 어버버 하다가 결국 '아 저는 토모코가 아닙니다' 라고 해버렸다. 갑자기 직설화법. 


전화를 끊자 왠지 아쉬웠고, 아쉬운 마음에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다. 아, 내가 토모코였다면 좋았을 텐데. 침대 위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누운 채 이 귀여운 여자애랑 삼십분 한시간 수다를 떨어댔겠지. 지나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그런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야. 




'탄자니아에서 밤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의 일인데 말이야. 새카만 밤에 새카만 길을 달리고 있는데 초원 저 편에서 번개가 번쩍거리는 게 보이더라구. 헌데 으레 들려와야 할 우르릉 쾅쾅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몰라.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어. 그냥,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정도로 머나먼 곳의 번개였던 게 아닐까 생각해.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그 번개에 더 집중하고 싶더라구. 그래서 창문에 이마를 바짝 붙이고 먼 곳에서 번쩍 번쩍 하던 번개를 마음에 담았어. 그러다가 잠들었던 것 같아. 그런데 토모코, 너는 어때? 너도 기억에 남는 천둥 번개가 있어?' 침대 위에서 뒹굴대며 토모코에게 말을 걸어 보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그 여자애랑 토모코는 연락이 닿았을까? 지금쯤이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 있잖아 나 아까 너한테 전화 걸었는데 잘못건 거 있지? 되게 민망했어 근데 그 사람 일본어가 좀 이상하더라 외국 사람일까? (헤에- 진짜? 근데 신기하다 어떻게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딱 외국 사람 전화로 잘못 걸렸지?) 그러니까 말이야 진짜 별 일이 다 있어! ]


조금 더 다정한 우주에서는 토모코가 이런 물음표를 덧붙일 지도 모를 일이다. 

'근데 그 사람, 일본에서 뭐 하며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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