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

<정신과 간호사가 된 이유>를 읽고

by 둥글레

요즘엔 서점에 가면 심리학이나 정신과 관련 서적을 모아둔 서가를 기웃대게 된다. 그 중에서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정신과 간호사가 된 이유>.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갑자기 정신과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와, 정신과 간호사로 일하며 느낀 점들이 담긴 에세이 만화다. 참고로 '에세이'라고는 해도 작가가 곧 주인공은 아니다. 작가가 정신과 간호사를 취재한 뒤 그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구현한 것에 가깝다. 일본에는 이런 류의 코믹 에세이가 꽤 많은 듯 하다.




평범한 하루의 하늘이 갑작스레 무너져 내렸다. 딱히 지병을 앓고 있지도 않던 주인공의 엄마가 뇌출혈로 돌연 사망한 것이다. 당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로 정신없이 바빴던 주인공은 눈물이 나올 때마다 입술을 깨물며 엄마의 몫까지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며 프로젝트를 마친다. 자신을 돌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았던 주인공은 그 이후 서서히 무너져내린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막연히 뒤로 미뤄두었던 것이, 소중한 존재를 잃은 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으리라. 평소의 자신이라면 전혀 하지 않았을 행동의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돌연 깨닫는다. '아, 내가 지금 위험한 상태구나.' 그것을 계기로 마음의 병에 관심을 갖게 된 주인공은 회사를 그만두고 간호학교에 진학한다. 그렇게 정신병원의 간호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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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환자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뇌가 쏟아질 지도 모른다는 망상 때문에 365일 24시간 내내 털모자를 쓰고 다니는 여환자의 이야기다. 머리를 감지도, 모자를 빨지도 않으니, 늘 부랑자의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단다. 주인공은 환자가 가진 망상을 교정되거나 타파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환자가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룰로 보고 접근한다. 가을 축제를 준비하며 사이가 가까워진 틈을 타서 주인공은 환자에게 묻는다. "모자 계속 쓰고 계시면 가렵지 않으세요?" "가렵다기보다는.. 좀 더워." "괜찮으시면 3분 정도만 모자를 벗어보시겠어요? 모자를 벗자마자 수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있으면 뇌도 안 쏟아질 거예요." 땀을 뻘뻘 흘리며 고민하던 환자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인다. 샤워실에 자리잡은 그들은 진지하고 경건하게 작전을 수행한다. 주인공은 모자를 벗겨내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수건을 머리에 둘러준다. 그리고는 모자를 허겁지겁 씻어낸 뒤, 다시 수건 대신 환자 머리에 씌워준다. 숨 한 번 쉬지 않고 그 모든 작업을 해낸 주인공은 조심스레 환자에게 묻는다. "어떠셨어요?" 환자는 채 긴장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하지만 다행이라는 듯 말한다. "...안 쏟아졌어." 주인공은 밝게 웃으며 안도한다. "와, 다행이다!" 3분의 성공을 발판 삼아 그들은 5분, 7분, 10분, ... 시간을 늘려갔고 나중에는 샴푸에 드라이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이번엔 어떠셨어요?" "안 쏟아졌어.." "다행이다!"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방식의 접근이 의학적 측면에서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다는 식의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그녀는 여전히 뇌가 쏟아지는 게 두려워 모자를 뒤집어쓴 채 살고 있다. 그치만 이제는 잠깐이나마 모자를 벗고, 머리를 감을 수 있게 되었다. 지독한 냄새로부터도 해방되었다.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고 해서, 또 완치되지 않았다고 해서 애석해하기보다는, 이 작은 변화를 충분히 격려하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이 이야기는 늘상 '근본적인 해결'에 집착하고, 작은 성취를 소중히 하지 않으려 하는 내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망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돕는 단체에 대한 견학기도 기억에 남는다. 하모니라는 이름의 지원 단체는 정신병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생활을 지원한다. 정신병원에서는 환자와 의료진이 확실히 구분된다. 환자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의료진은 도움을 준다. 환자는 문제를 가지고 있고, 의료진은 그 문제를 해결해주려 한다. 하지만 하모니는 좀 다르다. 스탭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의료진과는 역할이 좀 다르다. 하모니 모임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상호작용의 결과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20년이나 병원에 입원해있던 환자는 자신의 생각이 망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지만(망상증 환자의 전형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 자기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며 '어쩌면 나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조금씩 증세가 호전되었다고 한다. 환자들끼리 교류하는 시간을 마련하지 않는 병원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모두가 이런 식으로 호전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웃으면서 '내 이야기는 진짜야!'라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하모니에서는 굳이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지하게 그 망상 이야기를 받아들여준다. 예를 들어(책에는 다른 사례가 그려져 있지만 대충 내가 만든 예로 설명하자면), 우메가오카 역 부근에서 수 차례 외계인과 접촉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우메가오카 역 부근을 돌며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모임을 갖는 식이다. "아, 저 자판기! 저 자판기에서 내가 커피를 뽑아서 외계인에게 대접했지." "오, 외계인도 커피를 마시나요?" "응, 그게 말야, 캔을 뜯지도 않고 눈으로 마시더라고." "캔이 투명하지 않은데 어떻게 다 마신 줄 알아요?" "흔들어보면 알지!" "아하! 그렇군요. 그나저나 외계인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네요." ... 하모니 홈페이지에 가면 망상이라는 말 대신 '복수의 현실'이라는 말을 쓰거나, '환청'이라는 표현 대신 '목소리와 함께 살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 또한 신선했다.

어떤 사람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자체를 문제로 보지 않으려는 노력과 문제와 더불어 살아보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하모니라는 단체의 활동에서 '문제와 더불어 살아보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끊임없이 자해를 하는 삼십대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진 엄마에게 버려져 시설에서 자란 남자는 24살 다리에서 추락하며 발달장애와 조현병을 겪게 된다. 자해를 하게 된 것도 그 이후. 그 남자의 간호사는 헌신적이었다. 이미 5년도 넘게 그 남자를 돌봐온 50대의 간호사는 병원에 두고 퇴근하면 마음이 불안해서 차라리 같이 퇴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그를 신경쓰고 있었다. 자식이 없는 그녀는 아들 돌보듯 그를 살폈다. 헌신적인 간호에도 자해가 계속되자 수간호사는 결단을 내린다. 자해를 한 뒤에는 기계적으로 거기에 합당한 의료처치를 한다, 하지만 자해 행위 자체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사태가 진정되면 '어떤 기분으로 자해를 했는지'를 묻도록 한다.

그 날도 남자는 유리창에 머리를 세게 박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호들갑을 떠며 응급처치에 바빴을 주인공은 건조하게 거즈와 소독약을 내민다. 남자는 거세게 화를 냈지만 주인공의 태도가 바뀌지 않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거즈와 소독약을 가지고 스스로 처치를 마쳤다. 30분 정도 지난 뒤 주인공은 남자에게 다가가 묻는다. "어떤 기분으로 그랬던 거예요?" 남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구체적으로 묻는다. "배가 고팠나요? 어딘가 아팠나요? 싫은 일이 있었어요?" 그 모든 질문에 아니라고 잘라 말한 남자는 머뭇대며 말한다. "잘 모르겠어.." 주인공은 남자에게 말한다. "고마워요. '잘 모르겠다'는 기분이라는 걸 안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지만 남자는 모르겠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자해를 하고, 또 언제나처럼의 질문에 대해, 언제나처럼 모르겠다 답하던 남자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간호사들에게 나는 그냥 환자잖아. 나를 제일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잖아. 엄마가 보고 싶어. 외로워.." 사실 자해를 하는 이유는 제각각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것을 느끼기 위해 자해를 하는 경우도 있고, 마음의 상처를 눈에 보이는 몸의 상처로 치환함으로써 안도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이 남자의 경우에는 '외로움'이 자해의 원인이었다.

눈물과 언어로 마음을 한 번 털어낸 덕일까. 그 후 남자의 자해행위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허가를 받아 외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외로워'라는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멀게만 느껴졌던 세상이 조금은 가깝게 느껴졌으리라 생각한다. 이제는 외로울 때 외롭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외롭다'는 단어를 이제는 손에 쥐었으니까.




이 책은 이런 구절로 마무리된다. '마음 깊은 곳에 갇혀 있던 외로움을 꺼낸다. 자신의 진짜 기분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그 행위야말로 예방이자 치료라 할 수 있다. / '미쳤다'라는 말 보다는 '마음의 병'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그리고 '마음의 병'은 자신이 겪고 있는 변화에 대해 마음이 보이는 반응이다.'

치유로서의 이야기가 갖는 힘과 마음의 연약함에 대한 문장들이라 아주 기쁘게 밑줄을 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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