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갑자기 생각나서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꺼내 읽었는데.. 아, 정말 아름다운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의 단호함이 좋다. 소망-현실-소망-현실의 연쇄로 이뤄진 구성 역시 탁월하다. 윤동주 시인의 이 아름다운 시어를 보통의 현실 언어로 번역해본다면 이렇게 되겠지? [나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하는 나약한 사람이다. 아아, 오늘 밤 역시 저 별이 바람에 흔들리는구나. 그래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도록 살아가야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내용이야 전달되지만 어째 밋밋하기 그지없다.
저 시의 탁월한 지점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라는 다짐 이후에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현실이 모습을 드러내며 끝이 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라고 멋있게 마무리했으면, 그 쯤에서 교과서 덮고 하하호호 친구들이랑 팔짱 끼고 점심 먹으러 가면 좋을 텐데... 그 멋지고 단호한 다짐 뒤에 매서운 현실이 있다.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한 나에게, 바람이 분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나인데, 내 그 소중한 별에 바람이 분다. 하지만 화자는 그닥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말한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라고. 매서운 현실이 반복되지만 그래도 화자는 얘기한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다짐으로 모든 것을 끝내는 인생이 아니라, 다짐 뒤에 고난이 있어도 굴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반복되는 고난이 있어도 계속 다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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