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의 <농담>을 꺼내 읽는다.
오늘은 유난히도 수다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나무를 흔들고 창문을 두드리고 노래를 불렀다. 이런 바람이 부는 날엔 체홉의 <농담>이라는 단편이 생각난다.
남자는 무섭다며 고사하는 여자를 기어이 썰매에 태운다. 바람을 가르며 내려가는 도중에 남자는 조그맣게 말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겁에 질려 있던 여자는 자신이 정말 사랑고백을 들은 것인지 아니면 바람 소리를 잘못 들은 것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여자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며 계속 썰매를 탄다. 그 때마다 남자는 속삭인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자가 자신의 입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 같으면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몇 번 기침하는 시늉을 하다가 예의 그 달콤한 말을 뱉는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매일 썰매를 탔다. 어느 날 여자는 급기야 혼자서 썰매에 오른다. 자신에게 사랑한다 말하는 것이 남자인지, 바람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멀찍이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썰매를 타고 내려온 여자의 표정을 살피며 여자의 결론을 가늠하려 하지만, 여자의 얼굴에는 썰매가 남긴 공포감만 남아 있을 뿐이다. 불어오기 시작한 봄바람에 눈이 녹는다. 사랑이 피어나기 좋은 이 계절이 외려 여자에게는 겨울이다. 겨울바람도 들려오지 않고, 남자도 어디론가 멀리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여자는 자신을 향해 울부짖듯 윙윙대며 부는 겨울바람과는 달리,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는 부드럽고 조용한 봄바람을 맞으며 눈물을 흘린다. 먼 발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봄바람이 다시 한 번 불어오길 기다리다가 바람에 맞춰 속삭인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바람을 향해 두 팔을 벌린다. ... 그냥 이쯤에서 마무리가 됐다면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되었을 테지만, 체홉은 여기에 시간이 지난 뒤 남자가 그 때를 회상하는 내용의 단락을 더한다. 그리고는 이런 문장으로 끝맺는다. '나이 든 지금,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런 농담을 했는지, 나 자신도 여전히 알 수 없다...'
이 단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나젠까가 혼자 썰매를 타는 장면이다. 고백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무서움을 무릅쓰고 썰매에 오르는 나젠까의 모습이 왠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 용감함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런 모험을 불사할 정도로 고백에 홀려있는 마음이 애잔하기도 해서.
읽고 나면 마음을 빈틈없이 꽉꽉 채워주는 유형의 책이 있는가 하면, 마음 여기 저기에 구멍을 숭숭 내버리는 유형의 책도 있다. 체홉의 작품은 대부분 후자에 속한다. 책을 읽고 나면 마음 여기 저기에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 사이로 온갖 감정이 드나든다.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지지만, 어떤 말도 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산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