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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Jan 31. 2019

그저 자연의 한 조각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반려묘 유키가 입원한 게 지난 일요일이니까 꼬박 4일째가 되어 간다. 서둘러 입원 시킨 일요일에는 유키가 없는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너무 슬퍼서 내내 도서관에 있었다. 두 시간 간격으로 유키 보러 갔던 것 같네. 온갖 검색어를 동원해서 온갖 정보들을 빨아 들였다. 일요일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는 제발 수치가 내려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밤중에 불길한 전화가 걸려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잠자리에 들었고, 2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 수치가 조금씩 떨어지는 걸 보면서 약간의 안도는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가슴을 조여오는 이 막막한 슬픔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나를 삼켜버리겠구나, 그런 실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막막한 슬픔은 곧 덩치를 부풀렸다. 외할머니의 죽음, 한국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의 죽음, 엄마 아빠 동생의 죽음, 내 친구의 죽음, ... 아직 닥치지 않은, 하지만 언젠가는 닥칠 것이 분명한 죽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남겨진 자로서 슬픔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 머리 속에 그려졌고, 그 부분만 줄창 반복재생 되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마음을 다잡으며 희망을 가져 보지만, 해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져 버리면 마음 속에 있던 어둠이 거짓말처럼 고개를 쳐든다. 그리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밤이 깊어갈 수록 불안은 심해진다. 그 불안에 맞설 방법을 모르겠어서 요 며칠 나는 밤 열 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었다. '얼른 자야지, 그래서 또 얼른 일어나야지.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그래도 좀 버틸 수 있으니까.' 쿵쿵대는 심장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피가 나도록 손톱을 물어 뜯으며 나는 나의 하찮음과 무력함에 절망한다.




오늘 아침 면회 가는 길에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었다. 얼굴이 따가워서 잠깐 멈춰선 채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세차게 흔들리는 걸 보며, 잊고 있던 노래 한 곡을 떠올렸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노인생각>. 모습을 바꿔 가며 사계절을 견디는 커다란 나무를 보면서 그 동안 내가 나무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저 때가 되면 힘없이 떨궈져 나가는 잎사귀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내용의 노래. 


하지만 이제는 잎사귀 하나에 불과한 나의 하찮음과 무력함에 위로를 받고 싶다. 언젠가는 닥칠 것이 분명한, 그래서 반드시 소화해내야만 하는 주변의 죽음에 대하여 내가 이토록 심하게 동요하는 건 어쩌면 나를 나무로, 그들을 나뭇잎으로 보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 푸르게 푸르고 푸르기만 할 건데, 왜 너는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거야? 나를 두고 가지 마. 나를 영원한 고독 속에 남겨 두지 마.' 


그치만 나도 사실은 나뭇잎일 뿐이야. 우리 모두 나뭇잎일 뿐이야. 시작과 과정은 제각각이었을 지 몰라도 우리에게 닥칠 결말은 똑같아. 힘겹게 매달려 있던 가지에서 툭 떨어져 땅바닥을 뒹굴게 되겠지. ...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주변의 죽음에 대한 관점 역시 좀 달라졌다. 이전에는 내가 극복해내야만 하는 '상실'이라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저 '우리의 죽음'으로 느껴진다. 상실은 곧 분리에 대한 불안이다. '나의 삶'에서 '누군가의 삶'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다. 하지만 '우리의 죽음'이라는 관점에는 분리에 대한 불안이 없다. 상태 변화에 따른 다소간의 적응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완전한 상실이 주는 고통은 없다. 




나는 가끔 우리 집 첫째 고양이 씽을 생각한다. 씽이 목숨을 거둘 때 나는 인도네시아의 한 호텔방에 있었다. 씽이 죽었다는 소식을 주고 받으며 우리 가족은 엉엉 울었다. 엄마와 동생은 한국에서 울었고,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울었으며, 아빠는 이라크에서 울었다. 


씽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씽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다. 그건 너무 슬프지만.. 나는 여전히 씽을 생각한다. 고등학생이던 동생이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면 천연덕스럽게 그 위에 올라앉던 씽을 기억하고, 자다가 갑갑해서 눈을 떠보면 태연하게 내 배 위에 올라앉아 졸던 씽을 기억한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어려운 CRT 모니터에 올라앉아 만족스런 표정을 짓던 씽을 기억하고, 비에 젖은 우산을 말리려고 거실에 펴 놓으면 피서라도 온 것처럼 그 아래 자리잡고 앉던 씽을 기억한다. 


씽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여전히 나의 삶에 찰싹 붙어 있다. 나도 곧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가겠지.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원소 단위로 분리된 뒤에 만나고 섞이고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니 상실에 대한, 분리에 대한 불안은 그만 접어두자. 우리 함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동안에는 따뜻한 햇볕을 많이 쐬고, 노랫소리 같은 바람소리를 듣자.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눈이 시릴 때까지 하얀 달빛을 바라보자. 그러다 누군가 까무룩 잠이 들면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자. 그렇게 체온을 나누자. 우리 중 누가 먼저 떨어진 나뭇잎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매달려 있어야 하는 나뭇잎이 함께 했던 시간을 웃으며 떠올릴 수 있도록, 그렇게 기억할 것들을 잔뜩 만들자. 


이제는 떨어진 나뭇잎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삶에 찰싹 붙어 있는 그 사람이 그런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삶과 죽음 모두 그저 자연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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