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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May 27. 2019

'어떻게든 되겠지'의 미덕

유한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긍정하는 유일한 방법


불안한 마음에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태평함이 깃들 수 없어요. 불안함은 불신감을 키우고, 불신감은 다시 불안함을 키워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거죠.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는 상태, 믿어야 산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상태. 그게 바로 불안에 잠식된 마음의 상태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 보니 저는 불안할 때마다 믿음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곤 해요. '믿음'이라고 하면 보통 종교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제가 주로 생각하는 건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에 가까워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은 무한하고 완벽한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은 스스로의 유한함을 끌어 안는 거라고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제 마음에 아주 조금의 불안함도 깃들지 않았던 유일한 시기가 바로 2010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일본으로 건너 왔던 그 때 말이에요. 그 무렵에는 저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믿음'이라고 하니 뭔가 좀 거창한데요. '나라면 뭐든지 척척 잘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식의 오만한 과신은 물론 아니었고요. [ 무슨 일이 닥쳐도 어떻게든 헤쳐 나가겠지. 그 과정에서 상처가 좀 날 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니까. 에이, 몰라. 닥치면 생각해. 뭐, 어떻게든 되겠지- ] 정도의 마음이었어요. 그런 걸 '믿음'이라 불러도 좋을까 망설이게 될 정도로 태평한 마음이죠. 하지만 저는 이 '어떻게든 되겠지'의 마음이야말로 유한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긍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되겠지'의 마음은 '뭐, 다 잘 되겠지'하는 식의 순진한 낙관과는 달라요. '어떻게든 되겠지'는 1)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무수히 닥쳐 올 것이라는 걸 알고 2) 그 중에는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며 3)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이 있을 지라도 결국엔 그 시기를 넘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내포하는 마음이에요. 그런데 불안한 마음일 때는요. 1)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무수히 닥쳐 올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너무나도 큰 고통을 느껴요. 2)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을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어쩐지 꼭 나쁜 일만 생길 것 같아요. 좋은 쪽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죠. 3) 그렇게 닥쳐 올 힘들고 괴로운 순간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어요. 심한 경우에는 덜컥 삶을 놓아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자신이 무서워지죠. 내가 나를 해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나에 대한 불신이 커져 가요. 나의 감정도, 나의 생각도, 나의 판단도 모조리 의심하게 되는 거죠. 나에게조차 배척 당하고 거절 당하는 경험이 쌓이면 쌓일 수록 부정적인 편향성은 커져만 갑니다. 


이쯤에서 불신과 불안으로부터 회복되고 해방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저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내 안에 엉켜있는 매듭 딱 하나를 풀어버리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런 식의 간편한 해방은 만들어진 이야기, 그러니까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 속 인물들은 2시간 혹은 500페이지 분량의 인생을 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압축적인 경험을 하죠. 하지만 우리 인생은 그것보다는 훨씬 길잖아요. 그러니까 벼락 같은 해방의 순간이 없다고 해서 결핍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네, 이거 제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적절한 불안함은 보통 특정한 사건에 의해 촉발됩니다.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주는 그 불안함은 사건이 잦아들면 자연스레 잦아들죠. 하지만 과도한 불안함은 우리를 위험으로 밀어넣습니다. 불안함에는 보통 원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도한 불안함에서도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 하지만, 사실 과도한 불안은 그냥 그 자체로 불안의 원인입니다. 모든 것에서 위험을 감지하는 것이 과도한 불안 상태의 특징이니까요. 


그 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만능 키는 뭘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약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햇빛을 보는 등의 몇 가지 유효한 방법들인데요. 이것들조차 항상 유효한 건 아니더라고요. 게다가 항상 유효한 걸 찾기 위한 노력은 또 다른 불안(평생 그 방법을 못 찾으면 어쩌지?,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항상 유효한 하나의 방법을 찾으려 하기 보다는 때때로 유효한 여러 가지의 방법을 늘려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때때로 유효한 여러 가지의 방법들'의 공통점이 보이네요. 그건 바로 관찰과 판단을 멈추는 것. 약이나 운동이나 평행우주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 모두 자동 사고를 멈춰주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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