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이탈리아 05편
웅장한 성베드로 광장과 대성당이 있는 바티칸 주변부는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골목들로 이루어져 있다. 워낙에 찾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보니 많은 레스토랑, 카페 또는 기념품 가게 등이 있지만, 대부분은 보통의 집들이 모여 있는 주거지역이다. 성베드로 광장에서 성천사성으로 이어지는 40여미터 폭의 대로는 '화해의 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무솔리니가 시작한 이 거대한 길은 무수한 로마의 약탈을 견디며 만들어진 바티칸 주변의 작고 아기자기한 동네풍경, 골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파시즘 선전을 위한 기념물 만들기 계획때문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하는 계획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여 그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결과들이 더욱 빛이 나는 이유를, 도시재생을 외치며 대규모 계획에서 동네별 작은 계획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주제인지도 모른다.
골목을 걷다 보면 종종 셔터가 내려져 있는 것들을 보게 된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다양한 디자인의 문도 재미있지만, 고풍스러운 거리 풍경에 드문드문 보이는 셔터의 무표정이 오히려 거리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표정한 셔터에 붙은 여러 개의 스티커는 '이 셔터에도 나름의 표정은 있다!'고 항변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 서로의 영역이 있다는 듯이 질서를 갖춘 여러 장의 스티커는 심지어 모두 셔터 설치 업체들이니, 이 얼마나 흥미로운 조합인가!
사람이 사는 길을 걷는 것의 소소한 매력은 바로 이런 것들의 발견(?)이다.
군데군데 있는 얼룩과 무언가 붙였다 뗀 자리, 중간에 있는 다른 크기의 벽돌, 구멍이 뚤렸던 것 같은 흔적, 위쪽의 볼록 튀어나온 곳의 아래를 따라 이어지는 전선 등에서 이곳에 사는 사람과 이곳을 수리했던 사람의 노력이 보인다.
그리고, 낡은 벽돌벽과 철문, 이 둘이 길위에 나타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했을 어떤 이의 고민과 노력을 떠올리며 그 진지한 자세들을 배운다.
그렇다고 마냥 진지하기만 하면 그 또한 심심하지 않겠는가! 적당한 진지함과 적절한 유쾌함은 우리의 생활과 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 바로 이 벽처럼 말이다.
어느 문 옆 심심할 수 있는 벽위에 유난히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다. 광고라기 보다는 다양한 패러디 물로 보여진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스티커라는 점이다. 덕분에 대체로 길거리예술에 활용되는 그래피티에 비해 섬세한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중간에 화려한 장식의 스톰트루퍼가 눈에 들어온다. 셔터위 광고 스티커처럼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붙어 있어 제각기 다른 것들이지만 정신없이 보이지는 않는다. 왼쪽 벽의 문 옆에 있는 성모마리아처럼 보이는 여인은 CCTV의 위치를 가르쳐주고 있다.
※ 이 글은 건축종합 플랫폼인 '에이플래폼'에 함께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