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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가 이준호 Mar 07. 2018

06. 거리, 질서 그리고 예술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이탈리아 06편

 로마의 거리는 넓지 않다.

 사람들은 넘쳐난다. 주민도 있지만, 관광객이 훨씬 많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없기도 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인도가 있는 곳도 있다. 사람이 겨우 한 명 지날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되는 곳도 많다. 그 좁은 거리에도 차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운반하는 차도 지나야 하고, 소방차도 지나야 한다. 많은 기능과 용량을 가진 큰 차들이 효과적이겠지만, 좁은 거리를 지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큰 용량의 차일 때보다 훨씬 자주 움직여야 하지만, 이런 거리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다.

트레비 분수 가는 길, Rome

 아담한 크기의 쓰레기 수거차량이 사람들을 사이를 조심스레 지나가고 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는 관광객들은 지나가는 차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차를 피해 비켜서는 순간은 차와의 거리가 꽤나 가까워졌을 때이다. 운전자에게는 무척이나 답답한 환경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구역을 돌며 수거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경적을 울리거나, 사람이 위협을 느껴 비켜서게 하는 방법을 써서라도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려고 할 것 같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차는 주변에 집중하는 관광객의 시선을 모두 견디며 천천히 속도를 맞춘다. 경적을 울리지도 않고, 위협을 느끼도록 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인다. 마치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다.

 문자로 기록했을 때 당연해 보이는 이런 것들은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효율적이지 않다'는 말이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효율을 기준으로 재편되기 때문이다. 많은 건축가들이 인간 중심의 공간을 만든다고 하지만 정작 실제로 인간의 행동과 삶을 중심으로 한 공간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레비 분수 가는 길, Rome

 차가 자유롭게 달릴 수 없는 거리,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는 거리,

 적당히 넓은 길, 나의 행동이 통행에 큰 불편을 주지 않는 거리,

 이런 거리는 젊은 예술가들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무대이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 캐리커쳐로 익살스러운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 얼마 전부터 SNS를 통해 전파되어 주목을 받았던 스프레이 아트, 바닥에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등 각자의 작업을 보는 것 만으로 이 거리는 훌륭한 갤러리가 된다. 경찰도 딱히 그들을 제지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경계근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작가들의 작품을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다고 믿고 있는 '자유로운 길'이라는 개념이 아닐까? 과연 우리는 길 위의 자유로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길에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면 바로 앞 가게의 허락부터 받아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유로움 그 자체가 아닐까 한다.

길 위의 작업실, Rome
길 위의 작업실, Rome

 콜로세움 주변에는 희한한 분장을 하고 관광객의 촬영 대상물이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들은 독특한 분장의 사진을 남겨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로마 병사 복장도 있고, 공중부양(?)을 하는 것 같은 분장도 있고, 온몸을 동상처럼 분장한 사람도 있다. 관광객들에게 자신과 사진을 찍자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 동상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차별화된 구걸일 수도 있고, 나름의 작품 활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든 누구에게도 제재받지 않을 수 있는 모습이 우리와는 미묘한 차이를 만든다.


 트라스테베레의 낡은 벽과 철문 위에 그려진 노인의 초상, 튼튼해 보이는 창살이 설치된 창문 그리고 그 앞의 쓰레기통, 다양한 오브제의 묘한 조화 속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가방을 든 남자의 한 걸음이 있다. 걷고 있지만, 멈춰져 있는 그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걷고 있다.

Trastevere! 그의 시간은 멈춰있다, Rome


※ 이 글은 건축종합 플랫폼인 '에이플래폼'에 함께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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