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이탈리아 07편
유럽 도시에는 대부분 트램이 있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버스, 지하철과 함께 대중교통으로 한몫을 하고 있다. 낡은 차량이 여전히 운행되기도 하고, 새로운 차량이 다니기도 한다. 19세기 말부터 주요 운송수단으로 이용되던 것이 지금까지 잘 이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도 트램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보던 모습이 전부이다. 1960년대 자동차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운송수단 효율의 척도를 자동차에 맞추면서 우리의 도로에서 트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후 도로 계획의 기준은 얼마큼 원활한 차량통행을 할 수 있는지에만 몰두했고, 덕분에 도시의 도로에서 자동차는 더 빨리 가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결국, 사람은 점점 그 길을 함께 이용할 수 없게 됐고, 길의 대부분을 자동차에 내준 채 좁은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길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이다.
트램은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번잡한 도시를 운행하고 있기도 하고, 자동차와 길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동차의 입장에서는 트램과 길을 함께 쓰는 것은 굉장히 불편해 보인다. 로마의 길에서도 자동차는 사람과 트램을 동시에 신경 쓰며 다녀야 한다. 속도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자동차가 다니기 좋게 길을 만들어 놓은 서울 길과 비교해 보라. 서울은 자동차가 많아서 속도가 줄어드는 경우가 아니면, 마음만 먹으면 제한속도를 무시하고라도 달릴 수는 있다. 도로를 자동차 중심으로 계획한 모습의 전형이다.
예전의 트램 노선이 여전히 운행되고 있고, 필요하면 새로운 노선들이 계속 생겨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서울에도 종로와 시청, 서울역을 다니는 트램이 자동차와 함께 길을 누비고 있었으면 어땠을지 상상해 본다.
좁은 로마의 길에 트램 노선이 지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길은 사람도 다니고, 자동차도 다니고, 트램도 다니는 길이어야 한다. 트램과 자동차는 최소한의 폭이 확보되어야 다닐 수 있다. 길의 폭만 보면 트램과 자동차 한 대씩만 다녀야 할 것 같다, 물론 우리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 좁은 길의 반은 테이블이 차지하고 있다. 바로 옆으로 트램 선로가 보인다. 그 옆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 길을 양분하고 있는 것은 레스토랑과 카페의 테이블과 트램이다. 사람이 걷는 길도 양쪽 가장자리에 있다. 너무 좁지도 않다. 테이블도 사람이 이용하는 장소라고 보면, 길의 반 이상이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자동차는 트램 선로를 함께 사용한다. 놀랍게도 이 길에 온전히 자동차만을 위한 길은 없다.
우리나라의 길이라면 트램과 자동차가 길을 양분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트램이 없으니 2차선 도로에 양쪽으로 좁은 인도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작은 차이가 전혀 다른 길을 만들어 냈고, 이것이 바로 로마와 대한민국이 갖는 '길'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할지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바티칸으로 가기 전 광장에는 오래된 트램이 선다. 트램은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공중에 있는 전선은 필수다. 그런데, 재미있는 풍경은 전선을 고정시킬 건물이 없는 이런 광장에서도 전선을 받치는 기둥이 없다는 것이다.
트램 선로를 따라 전선도 설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이 세워지고 그 기둥에서 전선을 지지해 주는 구조가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기둥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넓은 광장에서 조차 기둥을 세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 전선을 여러 가닥의 선으로 엮어서 지지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광장의 하늘은 마치 커다란 거미줄이 쳐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지지하는 선과 전선이 굵지 않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지지하는 방식은 꽤나 불편하다 설치하는 사람도 불편하고, 전선의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얻는 것은 꽤나 큰 차이를 보여준다.
트램 선로를 따라 기둥이 세워진 것을 상상해보라! 이런 풍경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작은 것들을 위한 고민의 결과들이 전부 '길'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전선이 선로를 따라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길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한 고민이 만들어낸 풍경 같은 태도 말이다. 일상에서의 편리함과 사람이 살아가기 더 나은 환경은 거창한 계획이나 멋진 디자인을 통해야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거창한 계획과 뽐내기 위한 화려함만을 좇고 있었다면, 이제부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섬세한 시선과 그것을 위한 꾸준한 행동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