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이탈리아 08편
건축을 공부하면서 책을 통해 접했던 많은 건축물 중 실제로 보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판테온도 그중 하나였다.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돔이라는 것과 그것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이 두 가지 조합이 만들어낸 공간은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판테온 주위에 있었다. 유명세에 비하면 오히려 사람이 적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판테온은 마치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연상되기도 하는 모습의 정면 건물에 둥근 원통형 건물이 이어져 있는 형상이다. 아그리파가 지은 원래 판테온이 대화재 때 불에 타서 사라졌으나,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 전역에 걸친 재건 계획의 일부로 완성되었다. 판테온은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으로 지어졌으며, 제국 내에 로마 신들을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로마 제국의 안정적인 통치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었겠지만, 이런 포용성이야말로 '팍스 로마나'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지름이 9m나 되는 구멍이 뚫린 돔 천정과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빛, 콘크리트 벽면의 정사각형으로 규칙적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문양(?) 등이 바로 우리가 판테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완전한 구를 구현한 것도 놀랍지만, 철근 없이 콘크리트만으로 이런 거대한 구조를 실현시킨 당시 기술자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이 놀라운 콘크리트의 두께는 아래에서 6m가 넘고, 위로 올라갈수록 얇아져서 구멍이 있는 쪽으로 가면 1m 남짓 된다. 콘크리트 무게를 줄이면서도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절충점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돔 구조에서 무게를 줄이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은 바로 정사각형으로 오목하게 만들어진 규칙적인 문양이다. 이 문양이 없는 판테온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밋밋하고 특색 없는 공간이 되었을지! 고대 로마인의 지혜가 엿보인다. 또한 판테온 바닥에서 천정 구멍까지의 높이는 43.3m로 실내 공간인 원통형의 지름과 정확하게 같다. 들여다볼수록 놀라운 건축이다.
판테온은 고대 로마의 기념 건물의 한 예로서, 이후 서양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고, 주랑-현관-돔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20세기까지 여러 공공건축에서 사용되었으니 진정한 기념비 적인 건축인 셈이다.
돔의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이 내부를 환하게 비춘다. 시간에 따라 벽을 비추는 햇빛도 함께 움직인다. 빛이 들어오는 구멍은 마치 하늘 한가운데 떠있는 태양처럼 보인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종교와는 상관없이 경건한 마음이 생긴다.
판테온의 입구는 북쪽을 향하고 있다. 정오에는 얼굴을 향해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들어오는 이곳은 신전을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신을 느낄 수 있는 구조이다.
안을 둘러보고 나오고 나서야 보이는 현관의 천정은 돌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다른 부분과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기와를 얹기 위해 만든 나무 구조가 눈길을 끈다. 양쪽으로 서 있는 아치구조 위에 나무로 된 삼각형의 구조가 보의 역할을 하며 가로놓여 있다. 그 위에 보와 서까래들이 다시 엇갈려 놓여 있고, 기와가 얹혀 있다. 거대한 돌, 콘크리트 구조와 아기자기한 지붕구조의 절묘한 조화이다.
들어가는 길에 무심코 지났던 로톤다 광장의 오벨리스크 역시 나오면서 비로소 입구의 두 기둥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판테온을 나와 나보나 광장으로 향하는 길은 주차된 많은 자동차와 가판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다. 바닥을 덮고 있는 오래된 돌은 시간의 힘으로 반짝거린다. 이런 시간의 흔적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것들의 힘을 우리의 도시와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으면 어땠을까?
판테온에서 십분 남짓 걸어가면 큰길(10m 정도 되는 길이지만, 경차 한 대가 겨우 지나칠만한 길들 만 보다가 나오는 이 길은 꽤 크게 느껴진다.)이 나온다. 길을 따라 벽처럼 늘어선 건물들이 있고, 중간에 건물이 끊어진 곳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광장이 펼쳐진다. 길쭉한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1층에는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야외 테이블이 펼쳐져 있고, 광장의 중간에는 화가들이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파라솔을 펴고 그림을 그려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이 광장은 원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경기장이었다. 모형 해상전투, 대중을 위한 놀이 등의 행사를 하던 대형 복합 스포츠 시설이다. 이후 파괴되어 거의 사라졌다가 17-8세기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재정비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이 있던 자리가 원래는 경기장의 관중석 자리였다. 초기 경기장의 모습은 흔적만 남았고 관중석은 사라졌지만, 재정비 이후로도 이곳은 시민들의 축제 장소였다.
광장 한가운데 있는 4대 강 분수 주변에서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이 분수는 나보나 광장을 대표한다. 오벨리스크를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하부의 네 사람은 나일, 갠지스, 다뉴브, 라플라타 강을 상징한다.
로마의 길은 좁다. 그런 길을 다닐 수 있는 경차들로는 승차감이 떨어질 수 있을 만큼 울퉁불퉁하기도 하다. 더구나 사람도 많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길도 많고, 인도와 차도의 구분은 있지만 정작 사람과 차는 그런 구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다닌다. 어느 길이건 위험해 보이는 무단횡단이지만 사람이 길에서 어정쩡하게 있으면 차들이 자연스레 선다.
우리의 길은 사람보다는 자동차의 통행이 우선이다. 사람에게 위험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자유로운 길의 이용을 우리들은 스스로 통제해왔다.
인도에 설치된 난간은 사람의 안전을 위한 것인가, 사람이 차도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가.
진정한 보차혼용로인 로마의 길에서 우리나라 길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