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이탈리아 04편
'테베레 건너편'이라는 뜻의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지역은 귀족 중심의 정치, 문화공간이었던 '포로로마노' 지역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던 보통사람들의 생활공간이었다.
오래된 골목은 로마 중심지와 비교하면 꽤나 좁았고, 건물은 보통의 벽돌로 쌓아 올린 뒤 시멘트로 마감한 단출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커다란 돌로 만들어진 (이곳 기준으로 트라스테베레인) 강 건너편의 건물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소박함이지만, 동시에 낡고 허름함이다. 긍정적인 시선이냐, 부정적인 시선이냐의 줄타기 일 뿐 어느 쪽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이 될지도 모른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바로 '트라스테베레' 지역의 매력이다.
로마의 대표적 서민주거지였던 이곳이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동네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이 레스토랑이나 카페, 바 등으로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방과 작업실들이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낡은 주거지에서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분위기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오랫동안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공방과 작업실이 많아 조용하지만 젊은 생기가 넘쳤던 분위기를 추억하면서도 많은 방문객이 들고 나는 지금의 활기에 적응해가는 듯 보였다.
해가 지면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과 야외 테이블을 위한 조명들로 좁은 골목은 이내 밝아진다. 밝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네 도시의 번화가에서 볼 수 있는 휘황한 네온사인들의 향연은 아니다.
우리의 거리는 더 밝고 자극적인 빛과 색을 이용해 서로 경쟁하듯 거리의 사람들을 유혹한다. 더 많이 드러내기 위한 경쟁이 사람들을 피로하게 만든다. 과함이 부른 참사인 셈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식으로 드러내지 않음이 오히려 거리 전체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렇게 경쟁하지 않아도 거리는 충분히 밝으며, 카페나 레스토랑은 충분히 드러난다. 한낮의 햇빛을 가리기 위한 파라솔에 달린 조명은 그 테이블에 앉은 손님만을 위한 빛이 되기도 하지만, 위층으로 흘러가는 빛을 막아주기도 한다. 트라스테베레의 밤거리는 다른 평범한 거리에 비해 밝고 활기차지만, 그 활기를 강조하기 위해 거리의 분위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 좁은 골목길은 당연하지만 차도 함께 쓰는 길이다. 외부인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주민들의 생활공간이기 때문이다. 좁은 길을 차가 지날 때면, 사람도 차도 서로를 배려한다.
사람들은 차가 지나갈 수 있게 빠른 동작으로 비켜주고, 차는 그런 사람들이 비켜설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준다. 동네를 완전히 벗어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배려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자연스러울 수 있다.
야외 테이블의 파라솔은 걷는 사람들의 불편을 방지하기 위해 반으로 나뉘어 있다. 테이블의 햇빛도 가릴 수 있고, 길을 막는 범위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서로가 조금씩 양보해서 만들어낸 그들만의 작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 이 글은 건축종합 플랫폼인 '에이플래폼'에 함께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