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ove of Journeys

여정길이 모이는 숲

by 그로브제이

숲. 숲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여행자들이 쉬었다 가는 숲 같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었건만, 어쩐지 나는 진짜 식물을 모으며 나무를 가꾸고 있다. 오늘은 온종일 마르지 않는 커피나무 화분을 들여다보며 아직 연약한 나무가 과습으로 죽는건 아닌지 안달복달했다. 결국 콧물이 나고 열이 나는 와중에도 상토에 마사를 섞어 수분이 덜한 흙으로 분갈이를 했다. 잘 자리잡은 커피 나무를 보니, 오늘 하루 할 일을 끝마친 기분이다. 죽이지 말고 좀 잘 키워보자, 매번 하는 다짐이지만 식물을 들일때마다 또, 해본다. 잎이 우수수 떨어진, 시트러스 계열로 추정되는, 우리집 2년차 화분에 눈이 갔다. 잘 키우지 못해서인지 겨울을 지날땐 항상 모든 잎을 떨어뜨린다. 아, 죽였구나. 하고 버리려하면 이상하게 새순이 돋아있는 걸 본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로 두번째다. 키우는 법을 좀 검색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떨어진 이파리 위로 천천히 물을 주었다. 물을 천천히 주어야 흙속에 길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된 정보다. 마지막으로 영양제 하나를 뜯어 흙속에 꽂아놓고 약 한평의 베란다 정원에서 돌아섰다.


오늘 또 한명의 여행자가 숲으로 들어왔다. 대체로 즐거운 이야기를 들고오시는 분이었다. 나는 편안함을 팔고 싶었는데 오히려 편안해지는 건 나인듯 하다. 즐겁고 열정있는 얼굴에 덩달아 기분이 약간 달아오른다. 뭔가를 해야한다고, 늘 나를 보채며 살았다. 그럴수록 오히려 공황과 불안에 시달려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사실 요즘은 앞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다.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의 어딘가를 살고 있는 기분이다. 고이고 멈춰있는 기분.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나서야 내가 길을 잃었다는걸 인정했다. 극복하려고 하니 오히려 주저앉았다. 그러나 주저앉았다고 해서 마냥 앉아서 삶을 허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천천히 일어나보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글씨를 쓰고 식물을 돌본다. 내일은 올리브 나무를 분갈이 하려고 한다. 한번 실패 했던 올리브 나무라 걱정되지만 해야한다면 해야지 어쩌겠나. 가지가 얼기설기 얽혔던데 가지도 조금쳐서 삽목을 해봐야겠다. 열심히 키워 열매도 좀 보고 싶다. 당장은, 그래, 열매를 보는 게 나의 목표다. 조그만 나무에 달린 열매 한 알이 가끔은 길잃은 사람의 목적지가 되어준다는 게 벅차게 기쁘다. 감사하다. 당분간 나의 목적지는 베란다 정원 속 화분이 될테다.

매거진의 이전글용서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