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오춘기 육춘기
나의 사춘기는 참으로 극악무도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과 남들처럼 공부해서는 남들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한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14살쯤까지의 나는 꽤나 모범생이었고 공부도 잘했다. 혹시나 하고 들어가 본 지역 신문사 홈페이지에 내 이름을 검색했더니 기사 여러 건이 여전히 검색되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였던, 오히려 좋아 보였던 내 삶은 사실 속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 법한 가정사로 인해 나는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는 정상적인 친구 관계조차 못하게 할 만큼 통제적인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항상 외로웠던 것 같다. 공부와 멀어지고 엄마가 나를 포기하게 할 만한 행동을 골라서 했다. 그런 파괴적인 행동이 결국에는 스스로가 제일 괴롭다는 걸 너무 늦게서야 깨달았다. 나의 사춘기는 사철 푸른 소나무도 이파리를 떨어뜨릴 만큼 강하고 추운 겨울이었다.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쩌면 엄마가 그토록 원하던 특성화 고등학교를 거쳐 SKY 대학을 가지 않았을까?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커리어를 쌓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춘기가 아니었다면 그런 삶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몰랐을 것이다. 내가 우리 지역의 일반 대학에 입학 등록을 하는 날 엄마는 내게 '이제 인생 망했네.' 하고 말했다. 아직도 가끔은 그 순간이 떠오른다.
삶에서 한 번이라도 발버둥 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혹자는 반항할 시기에 반항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혹한의 사춘기를 겪은 나는 가끔 찾아오는 감기 같은 우울 외에는 삶에 심하게 저항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삶을 다듬어갈 뿐이다. 매일이 늘 스펙터클하지는 않아도 자아가 안전한 '오늘'을 보낸다.
내 동생은 오춘기를 보냈다. 내가 폭풍 같은 시기를 보내던 때에 태풍의 눈에 숨어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동생은 가정에서의 큰 갈등 없이 유년기를 보냈다. 엄마가 그토록 원하던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SKY 대학에 합격한 것이다. 집에서 늘 외치던 인생의 목표에 끝내 도달했다. 그때 본인도 알지 못하는 오춘기가 느지막이 찾아왔다. 우리 자매에게 관심이 많았던 이모는 동생의 달라진 행동과 말투에 '좀 두고 보자'라고 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던 동생이 다시 평화를 찾을 때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내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졌으니까. 세상의 기준은 언제나 세상의 기준일 뿐이다. 동생이 오춘기를 겪는 동안 오히려 지방 아무개 대학을 나온 내가 이름 있는 회사에 취직을 했고 동생은 우리 부부가 절대 가지 말라고 했던 열악한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하지만 또 나는 그 좋은 회사를 3년 만에 그만두고 뛰쳐나왔고 동생은 아직도 그 조그만 회사에서 대리로 승진하며 나름대로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지금 동생이 누리는 평화 또한 오춘기를 겪으며 인생에서 발버둥을 쳤기에 결국 쟁취해 낸 것이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사춘기도 오춘기도 없이 육춘기가 와버렸다. 남편은 나와 10살 이상 차이 나는데 결혼 전까지 극심한 육춘기에 시달렸다고 한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아 알짜 기업에 성공한 남편은 아마도 인생의 목표가 그곳에서 끝난 듯했다. 흥청망청 노는 것도 모자라 여태 내가 들어본 어떤 일탈 중에서도 가장 대단한 일탈을 하고 살았다. 제때 사춘기를 겪지 못한 사람이 이렇게나 무섭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 사춘기는 정신적 고통의 연속이었을 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선배 엄마들이 어릴 때 사진을 많이 찍어두라고 한다. 사춘기가 오면 찍어둔 사진을 보면서 눈물 흘리게 될 거라며. 남편과 식사를 하다가 아직도 너무 귀여운 딸을 쳐다보며 '너 사춘기 때 엄마 속 썩일 거니?' 하고 물어보았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동그란 눈으로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는 아이와 하하하 웃으며 아이를 쳐다보는 남편.
그러다 내가 말했다.
"그래, 살면서 발버둥 한 번 쳐보지 않는다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우리 부부도 처음이기에 많이 아프겠지만 한 번쯤 세상에 반항해 보려는 갸륵한 저항정신을 가진 아이를 힘껏 받아주고 싶다. 아직 어린 날의 폭주하던 나를 받아줄 안전한 어른이 필요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