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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잉맘 이다랑 Oct 15. 2016

정말, 부모 뿐 이다.



한 학기에 몇번 정도는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상담수업을 나간다. 
특별시간 같은건데, 
놀이를 하기도 하고 수업을 하기도 하면서 
학교폭력이라든가, 공감, 감정과 같은 
여러가지 내용을 다룬다. 

이번 가을에도 한 초등학교에 
6번 정도 수업을 나갔다. 
수업을 하다보면 한 반에 몇명 정도는 
꼭 튀는 아이가 보인다. 
튄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다. 
산만해서 튀기도 하고, 
말이 많아서 튀기도 하고
너무 소극적이라서 반대로 튀어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담임선생님 마다 정말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똑같이 산만한 아이지만, 어느반 선생님은 
에너지가 좋은 아이라고 설명해주고
다른 선생님은 다루기 힘든 
골치아픈 아이라고 이야기한다.
똑같이 소심한 아이를 두고, 어떤 선생님은 
신중하고 차분해서 믿을 수 있는 아이라고 하고
다른 선생님은 적극적이지 않고 
어울리지 못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똑같은  아이지만, 매년 담임이 바뀌기 때문에 
작년에는 산만하다고 지적받았지만
올해는 에너지가 많고 적극적이라고 
평가받게 되는 그런 일, 참 흔한 일이다.
주변에서도 많이 보았고, 
상담했던 친구들 중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문제는 아이에게 학교생활의 비중이 크다보니, 
한참 민감한 때인 아이들이 선생님의 평가에 
의해서 영향을 많이 받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평가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기때문에 
아이가 순식간에 기가 죽어버리기도 하고, 
문제아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물론, 선생님들도 아이들은 좀 더 긍정적으로 봐주고 믿어준다면 좋겠지만 사실 쉽지 않고, 
학부모로서 거기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의 평가야 늘 바뀔 수 있고 
오락가락 한다고 쳐도
부모까지 그 평가에 따라 아이를 닥달하면, 
그 아이는 도데체 어디로 가야하는건가 
싶을 때가 있다

사실 나는 학교에 수업을 갈때마다 
참 갑갑하다. 
내가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한 걸음 떨어진 입장에서 바라보니
그 네모난 건물과 교실들이
정말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경직되어 보인다.
그 틀안에 담기지 못하고 튄다고 해서, 
이 아이를 비난할 수 있는 걸까.
오히려 우리 아이들을 담고 있는 
학교와 교실이 너무 작고 딱딱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아이들에게 참 미안해진다.


세상은 내 아이를 담아내기에 부족할 수 있고,
아이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내가 다 통제해줄 수도 없다. 
하지만 대신, 내 아이에 대해서 
가장 일관되게 오래도록 
같은 메세지를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부모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그 역할을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이 단단해 지고 
스스로 서서 잠재력을 피울 수 있게 될 때까지
괜찮다고, 너는 안전하다고, 
그렇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부모 뿐이다. 

또한, 내 아이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일, 
아이가 나의 말을 믿을 수 있게
그런 신뢰로운 관계를 만드는 일,
흔들리지 않도록 
삶과 사람에 대한 관점을 
고민하고 다듬는 일이.. 
아직은 어린 내 아이를 위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아이를 믿어줄 수 있도록, 
아이 뒤에 든든히 서 있을 수 있도록 
좀 더 의연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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