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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잉맘 이다랑 Mar 05. 2018

아이가 자란다



아이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하는 일은 늘 나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새로운 것에 두려움과 긴장이 많은 아이,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민감해서 쉽게 그것을 해소하지 못하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새로운 환경은 늘 어려운 고비였다.

어린이집을 두번 바꾸고, 선생님이 바뀌는 모든 크고 작은 변화.. 그때마다 나는 다른 아이들 보다 더 오래걸리는 아이의 시간을 기다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그 기다림에 무던해지기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까, 계속 이러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이 보통엄마인 나의 마음을 덮곤 했다.

새로운 유치원을 가는 오늘이 다가올 수록 나도 자꾸만 긴장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아이가 많이 힘들어 할텐데, 나는 어떻게 또 얼마나 아이와 견뎌주어야 하는 걸까.

그런데 이번에 아이는 달랐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을 스스로 달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좀 무섭긴한데, 아마 잘해낼꺼야 그지?"  등원버스를 기다리며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조금 무섭다고 표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긴장을 풀듯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는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씩씩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긴 하루를 보내고 하원버스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는 다소 피곤해보이기는 했지만 쉴새없이 내게 종알거리며 하루 이야기를 해주었다. "낯설었지만 괜찮아질것 같아" "친구이름은 하나도 모르겠는데 재미는 있었어"  

이전과 달리 자기를 달래고 조절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그새 아이는 이렇게 자랐구나. 내가 아이에게 달래주며 심어주었던 말들을 이제 아이가 스스로 꺼내어 쓸 수 있게되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없이 버겁게 느껴지는 육아의 길에서,  이런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조금은 그 무게가 가벼워진다.  

'아이는 자란다' 라는 그 사소하고 단순한 사실이 정말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아이를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이기기란 쉽지 않지만, 아이의 속도를 기다리며 그 지루한 이야기를  반복하여 심어주면 아이는 어느새 자라있다. 참 다행이지 싶다.

페이스북을 켰더니 4년 전 오늘, 아이가 처음으로 스스로 딛고 섰던 사진이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4년전 처음으로 딛고 섰던 그 아이가, 오늘은 처음으로 제 스스로 두려움을 딛고 마음을 세웠다.

내 손을 잡고 잠든 아이를 보며, 어쩌면 부모로서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이가 자란다는 것을 믿어주는 일. 그것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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