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아이도 헷갈리는 과도기가 있습니다
상담을 하며 만났던 나의 첫 내담자를 기억한다. 바로 그 무섭다는 중2 (요즘 중2는 괜찮은 편이다) 지금 내 아이는 중2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사춘기 절정에 이른 아이를 만나는 것이 참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청소년 아이들과의 상담은 상담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아이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가끔은 그곳이 피씨방이나 편의점일 때도 있었다. 청소년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차곡차곡 채워지면서, 나는 상담이 나에게 꽤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아이가 꽉 닫고 있던 마음에 작은 균열이 생기면서 나와 마음이 탁 - 닿는 지점이 반드시 있는데, 그 순간마다 묘한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사춘기의 절정을 맞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쌓여가면서 나에게 또렷해지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이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부모를 이렇게 싫어하게 되는 걸까?'였다.
게다가 나에게도 아이가 생기면서 이 의문은 큰 절망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보면 이렇게 예쁜데, 아이는 내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웃고 의지하는데-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왜 귀에 피가 나도록 조잘거리던 아이가 벼랑 끝까지 마음이 몰려도 부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에게 "오늘 해야 할 부분은 다 했지?"라고 물었는데, 아이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기시감을 느껴 고개를 들어 아이를 보았다. "엄마가 잘못들은 거야? 화가 난 거니?"라고 물으니 아이는 "아니, 내가 한다고.."라고 말끝을 흐린다. 말투는 다시 가라앉았지만 순간 지나쳐간 눈빛을 나는 읽고야 말았다. '아, 나 저 눈빛 본 적 있지' 이렇게 시작되는 건가?라고 처음 인지한 순간이었다.
그때쯤 가까이 살며 자주 집에 놀러 오는 초등학교 6학년 조카의 눈빛과 말투도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형부와 조카아이는 매일 반복되는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가 변하는 과정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현장에서 만났던 아이들은 어린아이들이거나 아니면 사춘기가 아주 농익은 상태인 청소년 아이들이었으니까.
내 아이를 직접 키우며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사춘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 한 방울 맺히며 점점 물들어가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춘기가 온 건지 안 온 건지 헷갈리는 그 모호한 영역이 있으며 모든 승패는 거기서 만들어진다는 것도.
사춘기 같지만 사춘기는 아닌, 올랑말랑 하는 그런 시기. 이 시기 아이는 굉장히 이중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자신이 대단히 뭐라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건지... 부모가 반복해서 묻고 확인하고 챙기는 것을 강하게 밀어낸다. 아이의 세련되지 못한 말투와 행동은 부모에게 종종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또 다른 순간 아이는 한 없이 어리고 약한 존재가 된다. 눈을 부라리던 호기로움은 어디로 가고 애정을 갈구하며 부모를 좀처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아이의 이런 모순된 행동은 부모에게 큰 '퐉침'을 줄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잘하면 잔소리할 일이 없거늘.. 부모가 하는 말은 싫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힘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기는 싫어하고, 불리하면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기는 비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자신을 제대로 대우해 달라면서 그에 따른 행동을 하지 않는 아이의 철없음에 부모들은 기분이 상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요즘의 부모가 더욱 당황스러운 이유는, 사춘기가 올랑 말랑 한 시기가 자꾸만 앞당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자기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좀 더 경험하고, 다양한 상황을 그려볼 수 있는 지점에서 사춘기가 시작되었다면- 지금은 이제 막 유아티를 벗기 시작하면서부터 스멀스멀 사춘기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이의 정서와 인지가 미숙한 상태에서 사춘기의 신호탄이 너무 빠르게 울리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반항스러운 말과 눈빛만 장착해 가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의 애끓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벌써 저러기 시작하면 진짜 사춘기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한숨 나와요
-아이와 좋았던 때, 아이가 귀여웠던 때 사진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요
-왜 아이방문에만 바람이 불죠? 바람이 불어서 쾅 닫힌 거라고 꽥- 하는데 너무 화가 나네요
-아이 비위 맞추는 것도 한두 번이지, 도대체 나란 존재는 뭔가 싶어요
-알아서 할 거라고 하는데 안 해요. 그러니까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죠
무척 열받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우리는 사춘기가 올랑 말랑 한 이 <중간과정>을 반드시 잘 보내야 한다. 이 시간이 앞으로 아이와 보낼 나머지 모든 후반전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기는 본격사춘기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사춘기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을 참고하기엔 조금 이르고 과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전에 사용하던 영유아기 육아방법은 삐거덕 거리며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들 것이다. 사춘기가 올랑 말랑 한 이 시기는 부모에게도 무척 애매하고 아이 또한 스스로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르는 어려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아이 자신일 수 있다.
이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좀 더 섬세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춘기가 시작하기 전 무엇을 점검하고 준비해야 하는 건지, 아이와의 시간은 이제 어떻게 채워가야 하는 건지 그리고 부모인 나의 태도는 어떤 방향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하는 건지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청소년의 마음에 닿아본 적이 많고, 내 아이의 사춘기가 올랑말랑 내 속을 끓이고 있으며 다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이것은 다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주는 책임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사춘기가 올랑 말랑 하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함께 준비해 보자- 이 시기를 현명하게 지나가보자! 지금을 잘 보낸다면, 진짜 사춘기는 생각보다 훨씬 수월할 수 있다.
- 이 시기를 잘 보내야만 하는 이유
- 관계를 놓치지 않기 위한 핵심 대화방법
- 아이의 기질특성별 고민과 갈등지점
- 상황 별 부모행동강령 :)
- 사춘기 전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부모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