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로잉맘 이다랑 Sep 25. 2015

나 분유먹여서 나쁜엄마야?

엄마가 행복해지는 육아이야기


마음의 평화를 찾은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굳이 그때의 이야기를 오늘 다시 꺼내는 건 어제 나에게 온 카톡하나 때문이다.

"언니, 나 분유먹여서 나쁜엄마야?"

민후를 돌보느라 정신없어서 뒤늦게 문자를 확인했는데 문자를 읽는 순간 멍해지면서 아련하게 잊혀졌던 마음들이 다시 올라온다.
그래, 나도 이렇게 힘들어하고 고민했었지..

사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출산하기 전까지는 모유수유가 정말 어렵고 엄마의 무한한 인내와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공부하는 무리에서도 약간 있는그대로 수용을 못하고 딴지를 거는 스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모유수유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아무런 저항없이 수용해버렸다. 그래서 나도 아기가 태어나면 꼭 모유수유를 해야겠다 생각했고
당연히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출산을 기다리면서 모유수유에 대한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노력과 의지만으로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출산하고 엄마가 된지 3일 후부터 깨닫게 되었다. 아기머리가 크고 딱딱해진 탓에 20시간 가까이 진통을 하고서도 결국엔 수술을 하고야 말았는데 남보다 오래 병원에서 회복을 하고 조리원에 갈때까지 젖이 돌고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분명히 언니들이 젖몸살이 올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뭐지? 나는...?

조리원에 가서 가슴마사지의 도움을 받아
유선이 뚫리고 젖이 돌았지만 아기에게 먹이는 다음과정도 쉽지 않았다. 젖소가 되는 굴욕감과 우울감을 이겨내며 유축까지 시간마다 했지만 점점 먹는양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아들에 비해 나의 젖양은 그저 미안할뿐이었다. 조리원 수유실에서 젖이 팡팡- 나오는 엄마들 사이에서 수유하기가 싫어서 방에서 앉아 울며짜며 수유를 하던 그때의 그 기분이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참 별로다.

분유를 혼합해 먹이면서도 집에가서 시간이 흐르면
어느정도 해결이 될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집에오니 몸과 마음이 피곤해서 그런지 그나마 없던 모유가 더 줄어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여름출산으로 인한 접촉성피부염까지. 약을 먹을 수 없으니 차도가 없는 피부를 벅벅 긁으면서 괜한 패배감과 죄책감으로 어느쪽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그렇게 몇 주를 힘들게 보냈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모유수유 하는 엄마,                 행복하게 분유수유 하는 엄마이다.


그러던 어느날 밤, 수유를 하고 몽롱한 정신가운데 유축을 하는 중에 정신이 갑자기 번쩍들었다.
"내가 생각해오던 육아가 이런 건 아니었잖아?"


갑자기 늘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부터 나는 나오는 만큼만 먹이면서 서서히 줄여나가고 분유를 먹이겠다고 다짐했다.

인위적으로 만든 분유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유가 영양학적으로 훨씬 더 좋을 것이다. 면역력부터 시작해서 엄마와 아이의 애착에 이르기까지-
엄마의 불편감과 희생을 제외하고는 장점투성인 모유수유.하지만 그것이 엄마의 건강한 몸과 마음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랜시간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엄마의 행복한 정서라고 생각해왔건만, 이런 나 역시도 막상 그 상황에 닥치니 모유수유를 포기하는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쉽게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후에도 가끔씩 지나가던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모유수유를 하냐고 물으면(그걸 왜 처음보는 사람에게 물을까 싶지만;) 순간순간 위축되는 감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엄마에게 내가 먼저 분유수유를 하고 있음을 알리면 그제서야 반가워하면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엄마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모유수유를 끊어가면서 약을 먹고 몸을 회복하고 육아의 부담도 남편과 나누어 가지기 시작했다. 먹고싶은 음식도 먹고, 운동과 다이어트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젖병을 소독해야하고 짐이 많아지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지만 외출해서 수유실을 찾아헤메거나 무리에서 빠져나와 홀로 수유해야하는 고립감에서 벗어나 어디서든 남편이나 가족과 부담을 나누어 가질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수많은 희생과 어려움을 감내하고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을 나는 여전히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희생과 인내가 아이에 대한 사랑을 알려주는 척도는 아니다. 모유수유를 하지못하게 되었다고 아이의 발달이 느려지는것도 아니다.


모유수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그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고 이후에도 엄마의 마음에 죄책감이 남는지 나는 경험함으로써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고민과 결정끝에 다시한번 확신하는 것은 수유방법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유일한 무언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의 행복.
행복하게 모유수유하는 엄마,

행복하게 분유수유 하는 엄마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듯이 나와 내 아이의 조합은 오직 하나뿐인 특별한 관계이다. 어느 한쪽의 육아방식이나 수유방식이 강조되고 일방적으로 요구되기보다는 엄마의 선택과 결정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그리고 특별한 나와 내 아이를 위한 가장 행복한 결정을 소신껏 내낼 수 있는 엄마들이 많아지기를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발달단계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