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인, 현 백수가 북토크 쇼에서 발견한 감정
광화문에서 아침 카페알바를 하면서 무서운 게 생겼다. 바로 무표정으로 들어오는 직장인들이다. 대부분이 그렇고, 나도 얼마 전까지 무표정을 하고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까지 카페나 편의점에 들어가 계산을 했다. 게다가 어쩜 다들 이 추운 겨울에도 아이스를 드시는지, '사람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섬뜩하다. 가끔은 따로 가서 '괜찮으세요? 출근을 하시다니 기특해요!'라고 말 걸고 싶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표정은 직장인 시절 방패이자 무기였다. 아무 일도 없는데 ‘무표정'을 장착하는 건 생존 필수 능력이다.
'오늘도 무사히, 아무 일 없게'는 많은 직장인들의 목표다. 나도 그랬다. 주목받지 않는 회사 생활이 간절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보이는 마케팅 업무를 맡으면서 대중의 반응에 따라 회사 내에서 비판과 칭찬의 파도가 실시간으로 왔고, 감정은 널을 뛰었다. 그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고 조언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효과가 있다. 가혹한 평가, 과분한 과제 앞에서 얼굴엔 무표정을 짓고 뇌와 심장을 돌과 얼음으로 만들면 아무 일도 아닌 거라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초년생 시절엔 누가 퇴사를 한다고 하면 '헉? 무슨 일이지. 아쉽다 밥 한번 같이 못 먹었네, 연락이라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졌는데 5년 차가 넘어가니 누군가의 퇴사는 아무일도 아니다. 회의 시간엔 아무도 농담을 하지 않았고 누군가가 작은 웃음을 지어도 보고에 집중했다. 비로소 어엿한 한국 직장인이 됐다.
백수가 되고, 김연수 작가의 토크쇼를 갔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다. 바로 수줍음이라는 감정이다. 부끄러움, 쑥스러움, 수줍음으로 뭉쳐진 어른이 정말이지 낯설고 오랜만이었다. 자신의 글을 예찬하는 독자들의 눈을 잘 못 마주치고, 자신의 책 구절을 낭독해 달라는데 수줍어하면서 떨린 목소리로 여러 번 읽다 말다를 반복했다. 팍팍한 사회현실에 자신은 소설가로서 무엇을 했는지 고민했고 부끄러워했다. 그날 김연수 작가보다 그에게 묻어있는 수줍음, 부끄러움이란 감정에 환호했다. 그날 내가 김연수 작가의 직장 동료였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무표정을 하면서 속으로 그를 한심하게 생각했을 거다. ‘자기가 쓴 문장하나를 똑바로 못 읽네', '한 게 없어도 성과를 있어 보이게 만들어 내, 뻣뻣하게 목을 들고 말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어제는 은유작가의 북토크쇼에 다녀왔다. 정말 좋았던 건 참가자들의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이었다. 작가가 입만 뻥끗해도 누군가는 큰 웃음을 내기도, 혼자 풋 웃기도 했고, 난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냥 작가가 좋고, 글 쓰는 사람은 글이야기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니깐 사람들이 많은 데서 줄줄 눈물이 났다. 보통 이런 대담회는 1시간을 넘기지 않는데 이날은 2시간 가까이 글쓰기에 관련한 대화가 오갔다. 초반엔 한두 명만 손을 들어 질문했는데, 엉뚱하기도 하고 엉성한 질문이기도 했다. 근데 중요하지 않았다. 그 공간에 모두가 아직 정리되지 않는 생각에도 '아 그 감정 뭔지 알아'라는 공감의 탄식이 새어 나오기도 했고, 은유작가는 마시마로처럼 눈꼬리를 내려 고민에 공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행사의 따스함이 더해졌다.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용기를 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하게 만든 건 행사장을 꽉 채운 공감과 자유로운 감정 표현 덕이었다.
은유의 북토크쇼를 관통한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라는 공감이 직장인 시절엔 참 낯설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왜 힘든지 정확하게 문제 인식하지 않으면 말하지 못했다. 요구와 개선을 원하면 처음부터 똑 부러지고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준비해 말해야 했다. 질문도 급과 수준이 있었다. '네 질문이 이해가 안 되는데?' '사전조사는 하고 질문 한거야?'라는 말을 듣던 시기가 아프게 다가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가 이 토크 콘서트의 주최자인 마케터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행사를 자주 진행하는 마케터였는데 행사는 제시간에 끝내는게 관건이다. 시간이 늘어지면, 참석자, 진행자 항의가 들어온다는 조언 때문이었다. 그래서 행사 시작 50분이 넘어갔을 때부터 마음이 타들어 갔을 거 같다. 그치만 무표정을 하면서 참가자들의 '질문의 급과 퀄리티'를 생각했겠지.
작년 직장인 시절은 힘들었다. 그래도 적금은 넣어야 하니깐, 삼십 대는 한창 커리어를 쌓아야 할 때니깐 이라며, 무표정의 얼굴을 하고 아침에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퇴사하고 나서 월 109만 원의 카페 알바 급여가 전부인 요즘 행복하다. 그 근원은 감정을 풍부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 여러 무료 전시회와 북토크쇼, 소설책을 보면서 감정의 파도에 부딪히고, 유튜브와 브런치, 블로그에 글을 쓰며 감정을 표현하려 한다. 잊고 있던 다양한 표정을 발견하고 재생시키니 다른 사람의 감정이 보이고 세상이 재밌다.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송하는 라이더, 처음 붕어빵 장사를 해서 삐뚤빼뚤한 빵을 내밀며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 아줌마, 식당에서 자지러지는 아기. 내가 일했던 광화문, 삼성동, 을지로 오피스타운엔 숨어 있던 귀한 감정이다.
아침마다 총 3명의 카페 동료들과 수백 명의 사람들의 커피와 샌드위치를 판다. 들어오는 손님들도 무표정이고, 주문줄이 길어지면 우리도 무표정이 된다. 하지만 신메뉴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우와! 너무 달콤해요'라고 말하거나, 주문을 잘못 받고, 실수한 것들, 별 거 아닌 일을 말하면서 고마움과 웃음을 자주 표현하려 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전 까지도 '어떻게 살아갈까'가 인생에 가장 큰 질문이었다. 높은 연봉을 받고, 커리어를 인정받고, 야무지게 살아가기 위한 목표지향적 삶. 근데 사회생활을 하고 두 번의 퇴사를 하니 질문이 바뀌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다. 요즘은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뒤죽박죽 두서없이 말해도 공감하고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요즘이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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