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랄 맞은 상사들에 대하여

누구나 그렇게 팀장이 된다

by 배추도사

초보 팀장도 나름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팀원들에게 한대 처맞기 전까지는. 작년, 처음으로 팀장을 맡았다. 그리고 망했다. 나름 계획은 있었다. 직장 생활 8년 하면서 지랄 맞은 윗사람과의 일한 경험은 오히려 좋은 팀장을 명확하게 해 줬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굳게 다짐하게 했다. ‘마이크로 매니징 하기보다는 팀원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사람‘, ’ 말을 편하게 걸 수 있는 사람‘, ‘실수해도 화내지 않고 위로를 하는 사람’, ’팀원을 이해하며 달래가면서 일 시키는 사람‘ 등. 팀장들의 지랄 맞은 모습들을 반면교사 삼아, 좋은 팀장의 역량들을 깔때기로 모으면 ’착한 팀장‘으로 수렴됐다. 근데 팀장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착하고, 욕먹는 걸 두려워하는 팀장이 최악이라는 걸.


SNL의 MZ 신입사원 편은 개그가 아닌 현실고증이 잘 된 다큐다. 아니, 현실은 더 골 때린다. 모자를 쓰고 이어폰을 끼며 자기만에 세계에 갇혀있는 모습, 자기 일 할 때 말 걸면 못 들은 척하거나 끝내 이어폰을 빼면서 짜증 나는 표정을 짓는 팀원, 뭘 모르거나 서투르면 바로 비웃거나 트렌드에 뒤처진 사람이 취급하는 것, 그리고 표정으로 바로 드러내는 것.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감정적이지 않겠고 몰아세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키려니 속은 문들어졌고, 팀은 망가졌다. 동료 팀장을 붙잡고 하소연을 해도 마음이 나아지긴커녕 공허함과 막막함이 몰려왔다. 팀원일때 ‘팀을 제대로 못 운영하는 건 100% 팀장의 무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팀장들이게 한 말이 미래의 나를 향한 말이 될 줄이야.


젊은것들은 원래 문제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할 자격이 없다. 하루 종일 팀원의 미운 모습과 과거 내 모습이 자주 겹쳐 보였다. 퇴근길마다 지랄 맞던 나의 팀장님들에게 고해성사를 했다. 지랄 맞음엔 다 이유가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궁금했다. 대표나 팀장들은 왜 하나같이 화가 많거나 무표정일까. 아랫직원에게 긁는 말을 해댈까. 회사 생활을 하면 왜 다 꼰대가 될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표정관리를 못하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트렌드는 젊은 내가 더 잘 안다며 오만한, 나 같은 직원을 일하게 하려면 지시하고, 닦달하고, 혼내야 한다. 되돌아보니 좋은 팀에서 일했고, 팀장 복도 있었다.


팀장들의 히스테리와 지랄이 무서워 꾸역꾸역 했던 일들이 지금의 밥값 하는 나를 만들었다. 계속 실수하는 엑셀 작업을 제대로 해올 때까지 퇴근 안 시켜 주던 상사, 네 보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면박 주던 대표, 매출 성장 전월 대비 150% 만들어왔는데, 이거 가지고 만족하나며 200% 해내라고 윽박지르던 인간, 불가능하든 말든 일이 되게 만들라고 하던 임원진. 그 히스테리에 속으로 욕을 했고, 흐리멍덩한 눈깔을 하고 못 들은 척하기도 하고, 저 인간 처럼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근데 이력서를 쓰면서 결국 그 인간들 지랄해서 해냈던 일들이 한줄이 됐고, 새로운 회사에서 ‘이거 할줄 알아요?’ ‘잘 하셨네요‘라고 이야기 듣게 하는 것도 원래는 잘 못했는데, 이전 팀장들이 포기 하지 않고 계속 나에게 일을 시켰기 때문에 잘하게 된 일들이었다. 팀장이 돈을 더 많이 받는 이유는 어쩌면 ’욕쳐먹는 값‘일거다.


얼마 전 새로운 회사, 팀원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팀. 상사의 눈빛은 차갑고, 표정은 싸늘하다. 회의의 공기는 서늘하다. 근데 안심이 된다. 오히려 행복하고 평온하다. 예전에는 발랄하고, 자유롭고 편한 것만이 좋은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지랄맞고 불편한 것이 성장의 밑거름이란 걸. 팀원일 땐, 팀장의 개인 메시지가 귀찮고 짜증 났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왜 귀찮게 꼬치꼬치 캐묻는 거야’, ’ 그룹 채팅에서 일하는 거 못 봤나? 뭘 또 보고를 해?‘ 생각했다. 이젠 자발적으로 하루 시작 전후로 보고를 하고, 잠시 편의점 다녀오는 것도 이야기한다. 프로젝트 매니저이지만 욕먹는 게 두려워서 착하게 말하거나, 누군가의 불만에 쉽게 마음을 다쳤는데, 이젠 욕을 먹든 말든 ‘목표는 일을 되게 하는 것’을 되뇌며 정확하게 말하고, 팀원들을 쫀다. 그렇게 변한 내가 맘에 들고 이전보다 일이 더 잘 되고 순조롭다 생각한다. 실패한 팀장이었지만, 그렇게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일꾼이 되고, 한 발짝 더 리더에 다가간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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